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사실 최근 독하게 감기에 걸려 본 적이 없다. 그 비결은 바로 친구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우연히 보게 된 '감기에 걸리지 않는 비법'을 속는 셈 치고 잘 따라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방법은
'감기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쌍화탕'을 마셔라.'
였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쌍화탕은 오백 원짜리와 천 원짜리, 두 종류가 있는데, 효과는 모두 똑같으니 굳이 비싼 쌍화탕을 마실 필요가 없다. 대신 반드시 '일반의약품'이라고 쓰여있는 제품이어야 하며, 맛만 흉내 낸 추출음료를 음용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런 디테일한 내용은 글의 신뢰도를 더 높여준다. '아. 저런 일반화된 진리를 도출해내기 위해 오백 원짜리 천 원짜리 닥치지 않고 다 마셔봤다는 거구나.'하면서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었더랬다.
중요한 건 역시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태를 감지해내는 것인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감기에 걸린 것이야 누구나 다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태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잖아.
그 포스팅에서 친구는 '기침을 하던, 콧물을 흘리던, 가볍게라도 이미 감기에 걸린 상태가 되어버리면, 쌍화탕을 마셔도 효과를 볼 수는 없다. 무조건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즉 '아직은 감기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 마셔야만 효과가 나타난다.'라고 했다. 물론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태를 판별하는 방법 따위는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 그것까지 제대로 기술했다면 이 방법은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무조건 쌍화탕을 마셨다. 약국에서 처음 쌍화탕을 사러 갔을 때 약사는 '자. 여기 1000원입니다.'하며 쌍화탕을 건넸고, 나는 그 포스팅에 충실하게 재주문을 시도했다.
'저. 500원짜리 두 개로 주실래요?'
약사는 '도대체 500원짜리 쌍화탕이 있는 건 어찌 알고 있는 거지? 제약 관련된 직업을 가진 가족이라도 있는 거야?'하는 표정으로 부채표 쌍화탕을 건네주었다. 다시 한번 포스팅에 대한 신뢰를 다지게 된 나는, 그 때 이후로 - 도저히 알 길 없는 -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태가 되면 늘 쌍화탕을 들이켜댔다. 그 해 겨울 난 약 50병의 쌍화탕을 마셨고,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후 삼 년 동안 나는 같은 방법으로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태를 감지해내는 능력은 도무지 나아지지가 않아서 쌍화탕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원래 한약을 싫어하기도 하는 데다가 너무 달아서 나중에는 쌍화탕을 마시는 게 곤혹스러웠는데, 가끔은 '휴. 쌍화탕을 먹느니 감기에 걸리는 것이 나은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더 이상 쌍화탕을 마시지 않게 된 계기가 발생하고 말았는데, 바로 4년 차 겨울이었다. 너무 자주 쌍화탕을 마시게 되는 것이 싫어서 좀 더 관대하게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태를 판단해내다가, 감기에 살짝 걸려버린 상태에서 쌍화탕을 마시게 된 것이다.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쌍화탕을 마시니 친구의 포스팅대로 감기가 낫지는 않았는데, 더 악화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허준과 친구의 명예를 위해 쌍화탕으로 감기를 이겨 보이겠어!' 하며 쌍화탕을 박스로 사놓고 마셔댔다. 감기는 물론 낫지 않았지만, 쌍화탕 때문에 더 심하게 진행되지도 않았다. 쌍화탕에 아주 물려버린 나는 며칠 후 쌍화탕 마시기를 포기했고, 그러자 마자 감기는 상당히 독하게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었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쌍화탕을 마시지 않았다.
지금도 감기가 심하게 걸려 삼 주째 고생하고 있지만, '걸리기 전에 쌍화탕을 마실걸'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너무 선명하게 알고 있는 그 맛을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부르르 떨려버리니까. 그래도, 혹시 탕약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살짝 권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든 삼 년 동안 감기에 걸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때 내 면역력이 최고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좀 감기가 떨어져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