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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Dec 16. 2018

돌이킬 수 없는 진화

폰은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


한 십 년쯤 되었을 것 같다. 처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했던 게 말이다.


그 당시는 애플이 마드(하드디스크의 일종)를 붙여 큰 용량으로 차별화시켰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고 있을 때였다. 클릭 휠 인터페이스 말고는 그다지 특이한 점도 없었던 아이팟은 소니의 워크맨(최초의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처럼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리고,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제품 발표 이벤트에서 폰 모듈이 결합된 아이폰을 소개했고, 이 발표는 - 증기기관을 출현을 넘어서는 - 새로운 시대의 서막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는 그 세션에서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포인팅 디바이스를 사용할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 말이죠.


그것은 손가락이었다. (물론 발가락도 가능하다. 심지어는 혀도 가능...)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의 지시에 따라 기존의 스마트폰들과는 달리, 스타일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 터치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실 UX (User Experience)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터페이스다. 기존의 웹이나 애플리케이션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인터페이스로 사용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는데, PC용 웹이나 애플리케이션의 메뉴가 작은 이유는 그 메뉴를 가리킬 마우스 포인트 끝이 그것보다 더 작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최선이든 아니든 그렇게 한번 익숙해진 구조는 소돔산의 소금기둥처럼 굳어져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물론 인류가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이유로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스마트폰들은 모두 스타일러스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우스를 사용해서 포인팅 하는 것처럼 정밀한 포인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스타일러스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난 마이크로소프트가 싫고, 스타일러스도 싫다고!' 하며 앙탈을 부렸고, 그렇게 탄생한 아이폰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웹 형태가 모두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대박을 치거나, 소문도 없이 사라지거나


하지만, 대박을 치는 바람에 모든 포탈이나 웹서비스들은 모두 m.으로 시작하는 모바일 사이트를 함께 제공하기 시작했고, 반응형 웹 디자인(Responsive web Design)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기업들은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에 이를 갈았고, Web Page 개발 업체들은 몇 년 동안 홈페이지 리뉴얼로 쉽게 먹고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


사실 장황하게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그때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던 철학대로 모든 사람들이 대동 단결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면 지금쯤 인류는 그 이전보다 훨씬 편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을 이기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고, 그 이후 안드로이드 진영뿐만 아니라 iOS 진영에서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에 몸을 실었다. 적어도 더 이상 스티브 잡스의 욕을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면서 폰의 스크린은 점점 커졌고, 아이폰 진영에서도 스타일러스를 - 아직까지는 패드 한정 이지만 - 사용하게 되었다. 덕분에 앱이나 웹들은 다시 이전 웹처럼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구조로 회귀하게 된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선택/집중형 UX보다는 고민과 생각 없이 대충 한 화면에 욱여넣는 옛날 방식의 설계가 훨씬 쉬우니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도 사람들은 커진 화면과 스타일러스 덕에 - 비록 어느 메뉴를 찍어야 하고, 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은 되지만 - 어떻게든 사용을 하긴 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스마트폰은 점점 초창기 이동전화 크기에 근접해갔고, 아마 앞으로 점점 더 커질지도 모른다.


- 이렇게 접힌 것을 펴면 더 커지고, 뒤집어 밀면 키보드도 나와서... 자, 랩탑만큼 커졌죠?


아님 말고.




사실 어제 사용하던 폰을 A/S 받으러 갔는데, 이틀 걸린다고 폰을 입고시키고 유심만 건네주는 거다. 잃어버리지 말라고 접수 내용이 인쇄된 스티커 안쪽에 유심을 붙여주는 걸 보고는 '와, 아이디어 대박이다'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그 인쇄 스티커를 찾는데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어쨌든, 겨우 찾은 그 유심을 굴러다니던 오륙 년 전 아이폰에 꽂았다. 그리고는 메신저와 음원 앱만 설치하고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이틀만 참으면 되니까. 그렇게 이틀 동안 다른 모든 알람에서 유리된 상태로


- 가끔 필요한 메시지만 보고,

- 음악만 듣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포인트 적립이고, 핀테크 앱이고, 통신사 할인이고 뭐고 다 안되니까 뭘 살 때도 포스 앞에서 뒷사람 눈치 보며 이리저리 앱 사이를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손가락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은 똑같았고, 그거면 충분했다.


- 스티브 잡스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봤자 폰 스크린이 몇 년 더 늦게 커질 뿐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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