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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Mar 02. 2019

알고 끄덕이는 겁니까?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여유가 없다는 말을 종종 썼던 것 같다. 너무 바쁘거나, 무엇을 하기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려웠을 때. 나는 ‘여유가 없네.’라고 했고, 그러면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즘도 나는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여유가 없다. 그것에는 분명히 명확한 차이가 있다. 마치 지구와 달처럼,


마치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사전을 찾아보면 여유 餘裕 는 ‘사물이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라 한다. 하지만, 두 번째 뜻은 조금 다른데,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가 그것이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무언가를 실행할 수 있을 만한 정신적 평정 상태'

내가 요즘 그랬다. 그런 의미로 여유가 없었다. 무언가를 할만한 시간은 충분하지만, 그것을 실행할만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의 Distractions 가사처럼, 고민거리들이 머리 주변을 나비 떼처럼 웅웅 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폴 매카트니의 그 곡을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해서 조용히 들어보면, Distractions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 대충 들으면 느릿느릿 조용한 곡 같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면 악기들이 서로 묘하게 어울리는 듯 튀는 바람에 - 말이 안 되는 표현 같지만 이 곡을 들어보면 ‘아!’ 하게 됨 -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기타의 커팅 소리와 쉐이커 사운드만으로도 이미 멜로디는 심연으로 밀려나 버리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곡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아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 것이다. 

어쨌든, 요즘은 이전과는 다른 이유로 여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어지는데,

‘진짜 알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냐고요?’


...


물어보나 마나 모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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