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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Mar 26. 2019

사이렌 오더와 싸늘한 커피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아침에 강남역을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 졌다.


나는 보통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물론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공복에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해부대 위에서 개흉한 개구리의 심장처럼 두근두근 거리기 때문이다. 딱히 잠이 덜 깬 것도 아니었다. 어제는 오후에 자전거를 내리 타서 그런지 아홉 시부터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으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욕구, 근원을 알 수 없는 암시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빠듯해서 커피를 사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스타벅스 앱에는 커피를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는 ‘사이렌 오더’라는 기능이 있다. 당연히 사용해 본 적은 없었지지만, 분명히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둔 기능일 거다.


앱의 사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가 마시고 싶은 음료를 선택하고 근처 가까운 지역의 매장을 지정하면 된다. 물론 위치정보가 사용되어 근처의 매장을 제안해주기 때문에 검색 없이 선택만 하면 된다. 샷 추가나 시럽 추가 등의 부가 주문도 간단히 더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내가 원하는 주문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작년 필라델피아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음료를 시키지 않고 앉아있던 고객 두 명이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으니 미국에서 사이렌 오더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체포되었던 건 여러 복잡한 이유가 얽혀있긴 했지만, 직원이 신고했던 표면적인 이유는 그들이 주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긴 하다.) 물론 여기는 서울이니까 괜찮겠지.


사이렌 오더를 하려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문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이었다. 내 커피가 완료대에서 밥이 뜸 들기를 기다리는 권영원 명인처럼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물론 식은 커피가 싫은 것도 있다.

아무래도 아침 시간이니 주문이 꽤 밀려있을 것 같았다. 10개 정도의 주문이 밀려있다고 가정하고, 포스에서 음료를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시간을 예측한 후 주문을 했다. 지하철은 아직 강남역에 도착하기 전.

주문 버튼을 누르자마자 바로 내 앞에 9명의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는 앱 알림이 뜬다. 이 정도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네. 스타벅스에 도착하면 입천장이 홀랑 까질만한 온도의 커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메시지 알림 소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뉴가 모두 준비되었어요. 픽업대에서 메뉴를 픽업해주세요!’


아니 어떻게 9잔의 음료를 십 초 안에 준비할 수가 있는 거지? 미리 내려 둔 커피를 용기에 담기만 한다 해도 쉽지 않을 텐데. 강남 우성점의 바리스타 9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각자 앞의 종이컵에 미리 내린 오늘의 커피를 따랐다면 또 모를까. 정말 그랬다면 장관이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꼭 매장에서 주문을 해서 그 광경을 놓치지 말아야겠어.’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 알림이 온다.


‘픽업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간다고. 미친 듯이 가고 있다고!


‘최상의 맛을 위해 지금 픽업대에서 만나요!’


속보하듯 걷다 보니 땀이 흐른다. 커피고 뭐고 샤워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 통합 주문 서비스 시스템은 고객이 앱 알림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강남 우성점 픽업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


‘뭐냐고!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주어를 써야 할 것 아냐! 문장이 모호하잖아!’


..



당연히 커피겠지만, 누군가에게라도 화를 내고 싶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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