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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pr 02. 2019

한가한 오후의 공격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지난주 아파트 옆 화단에는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쓰레기장 옆 벚꽃나무에는 흰 봉오리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하늘에서는 우박이 내렸다. 사람이야 옷을 두껍게 입던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되지만, 식물들은 개화 단계에 진입한 이상 - 반품불가 제품의 주문 버튼을 눌러버린 것처럼 - 돌이킬 수가 없다. 어쨌든 그 추위가 월요일인 오늘 아침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개나리던, 벚꽃나무던 꽤나 짜증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후가 되니 날씨가 조금 풀려서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조용한 곳에서 책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강남에서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카페를 하나 발견했는데, 음악도 틀지 않고 손님도 하나도 없다. 기분이 좋아져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포스 옆 테이블에 앉아 들고 간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 둘이 들어와 라테 두 잔을 주문하고는 옆 테이블에 앉는다. 머리가 짧은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존의 원단 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고급스럽다니까요.’


머리가 긴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머리가 짧은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형님, (이 원단으로) 생산이나 해봤어요? 처음부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머리가 짧은 사람이 훨씬 더 형님처럼 생겼지만, 동생인가 보다. 실제로 피를 나눈 동생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를 형님에게 공급하려 하고 있었고, 생산공장(?) 주인인 형님은 그 원단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고급스러운 원단이나 생산 경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카페가 너무 조용해서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또 여자 손님 넷이 들이닥친다. 한 명은 포니테일이고, 나머지 셋은 똑같이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했다. 포니테일의 여자 손님이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넷을 주문한다. 늘 이 멤버로 이 시간 즈음 카페를 찾는 사람들일 것이다. 주문 후 자리에 앉자마자 포니테일을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일본 갔을 때도 혼자 나시를 입고 돌아다녔잖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하면서 하던 이야기의 연장인가 보다. 그러자 긴 머리의 여자 중 하나가 이야기를 받는다.


‘그때 영상통화를 하는데 나도 놀랐다니까. 왜 벗고 있는 거야?’


두 문장을 들었을 뿐이지만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을 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예쁜 여성일 것이다. 물론 나시를 입고 돌아다니는 여인은 방송에도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 고급스러운 원단처럼 -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작고 조용한 카페에서는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는 사이 남자 손님들의 라테가 만들어졌고, 그들은 커피를 받자마자 바로 카페를 나섰다.


‘어머, 저 머리 짧은 남자 봤어? 팔에 문신 있었잖아. 조폭 같다 야.’



관찰력 뛰어난 포니테일의 여인이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독서고 뭐고 그냥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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