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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pr 09. 2019

봄비와 완벽한 하루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아침에 허벅지 위까지 내려오는 바람막이를 걸치고 방수 신발을 신은 채 집을 나섰지만 정말 비가 올 줄은 몰랐다.

얇은 바람막이는 안에 받쳐 입은 터틀넥이 조금 더워 보일 것 같아서 입었고, 신발은 어제 창고의 빈 박스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해서 꺼내어 둔 것이었다. 미국에서 살 때였다. 어느 날 아마존을 뒤적거리다가 '방수 신발'에 혹해서 ‘이런 신박한 물건이 있었어?’하며 세 켤레나 구매했었다. 나는 비올 때 신발 젖는 걸 싫어했으니까. 그중 하나가 두 해 동안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니. 정말 몰랐었다.


...


일을 다 보고 짐을 챙기며 바깥을 내다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구석에 지난번 비가 왔을 때 쓰고 왔다가 두고 간 우산도 있다.


정말 이렇게 완벽한 날이 있나?


집으로 가는 길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축축해 보이는데, 나만 봄날이다. 이 정도면 두 시간은 걸을 수 있겠어.


...


집에 도착했는데, 이게 정말 비 오는 날 귀가한 사람의 상태라니! 툭 치면 먼지가 날릴 정도잖아.

짐을 대충 풀고는 거실로 나와 일 년을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걸었다. 비 오는 날 집 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때 음악이 없으면 안 되니까. 스피커 볼륨을 약간 올려 주고는, 비용을 지불하지만 내 것 아닌 음악들이 스트리밍 서버에서 전송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첫 곡이 빌리 아일리시의 'idontwannabeyouanymore' 라니..


오늘은 정말 완벽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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