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에 없었다 - 조너선 에임즈
오랜만에 읽은 범죄소설이었어요. 스케일은 크지만 150페이지도 안 되는 - 심지어는 판형도 작음 - 중단편으로, 약간 과장하면 시로 쓴 소설 같은 느낌이랄까요? 주인공은 문제 해결을 위해 직진하고,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최대한 간결하게 담는데 집중합니다.
커닝 페이퍼 Cheat Sheet를 만들 때 기억나세요? 처음에는 A4용지 한 면에 빽빽이 채워 넣어도 모자라지만, 한 번 두 번 다시 작업할 때마다 문장은 간결해지고 양도 엄청나게 줄어들잖아요. 사실 그 이유는 작업을 하면서 머릿속에 저장된 부분을 종이에서 점점 덜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종 제작된 커닝 페이퍼는 작성자에게 개인화되어버려 작성자의 기억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거죠. 즉,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페이퍼 만으로는 커닝이 부족하다는 건데요.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읽으면서 남이 만든 커닝 페이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집중하지 않고 읽으면 마치 빈칸만 있고 설명은 없는 십자말 풀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서 엄청나게 간결해졌던가, 작가가 게을러서 '서술 따위는 개나 줘버려' 했거나. 아니면, 제가 딴생각을 하면서 대충 읽어서 그랬거나...
서술이 간결한 것도 있지만 - 개인적으로 - 번역도 한몫했다고 생각하는데, 앞 문장과 뒷문장이 뭔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사실 '번역가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문장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더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그래도, 짜임새도 있고 간결한 데다가 진행도 빨라서 나름 재미있게 읽긴 했죠.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더라고요. 남우주연상이라니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요즘 조커로 핫한 '호아킨 피닉스'네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름 만으로 '잘했겠군' 하게 됩니다.
사실 웃긴 포인트가 전혀 없는 소설인데, 엄청나게 빵 터진 부분이 있어서 그걸 소개하려고 이 포스트를 쓰게 된 건데요. 후반부에 주인공인 조가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했던 자의 집에 잠입하다가 맞닥드리게 된 두 명의 경호원을 제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조는 이들에게 총을 겨누면서 대화를 시도해요. 의뢰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 했거든요. 그런데, 조금 다혈질인 한 명이
'이 개자식이.'
- 일어서!
'널 죽이겠어!'
- 보토는 어디에 있나?
'엿이나 먹어.'
하고 꼬박꼬박 반항을 하다가 허벅지에 총을 맞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비교적 조용히 조의 말을 따르고 있었어요. 총을 겨누고 있으니 누구라도 그럴 것 같긴 하지만. 그런 그를 보며 조가 한마디 합니다.
- (꼼짝 않고 조용히 엎드려 있다니 네 친구보다는) 영리하군.
'노력하고 있어요.'
- 집 안에 몇 명이 더 있나?'
'저희 넷뿐이에요.'
휴 이거 저만 웃긴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존댓말은 좀 아니지 않나?
'우리 넷 뿐이야.'
라고 한다고 해도 총을 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그냥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