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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Feb 03. 2020

용기와 행복은 저축되지 않는다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이번 주 ‘놀면 뭐하니?’라는 예능 프로에서 유재석은 작은 라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작년 말에는 노란색 반짝이 옷을 입고는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어쨌든 그는 그 장소에서 함께 13년 동안 무한도전을 진행했던 박명수, 정준하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라면을 먹으며 - 치열하게 방송을 만들던 때의 긴장에서 벗어나 - 여유 있게 근황을 나누고 있다. 그들에게 웃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는 건 일반인들의 주말과도 같은 거겠지. 서로 노닥노닥 지나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늦은지도 모르는 그들. 함께 했던 기간이 그렇게 길었으니 밤을 새도 다 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있으니까. 한해 한해 살아온 기간이 늘어가면서 좋은 것이라곤 그것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했던 기억을 차곡차곡 쌓게 되는 것.


이윽고 그들은 돌아가고 유재석은 라면집 영업을 마감하려 하는데, 갑자기 들어오는 또 다른 손님이 있다. 홍현희와 양세형. 작년 그들은 MBC 연예대상에서 각각 신인상과 최우수상을 받았었다. 유재석은 라면을 끓이며, 그들이 열심히 했던 걸 알기 때문에 결국 성공할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최근 방송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 둘은 라면을 먹으며 과거 힘들었던 신인시절 이야기를 꺼냈는데, 마침 유재석은 예능계의 어떤 선배보다도 그런 이야기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방송국에 와서 사람들이 너무 다들 끼가 많은 걸 보고 기가 죽었어요. 나는 이 정도는 아닌데, 내가 이걸 계속해도 되나?’


양세형의 그 말은 유재석이 더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슷한 경험을 한다. 기타 코드 네 개를 겨우 익혀 그것만으로 돌아가는 곡을 간간히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조 새트리아니의 프레이즈를 보며 절망하지 않았던 기타 꿈나무들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그다음 레벨로 건너갈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질지도 모른다. 어쨌든, 늦은 밤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꽤 행복한 기분이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자면 안 돼요? 2차 가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고 홍현희가 말하자, 유재석은

‘무슨 소리야. 내일 일 안 할 거야?’ 하고 그들을 보내려 한다. 그러자 양세형은

‘나는 지금이 중요하다고요.’ 한다.


아마 그들은 모두 함께 한잔 더 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쉽다는 듯이 라면집을 떠나며 홍현희가 한마디 던진다.


‘용기와 행복은 저축되지 않는다고요.’



그 흘러가는 말을 들으며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그렇다. 행복한 기분일 때는 아끼지 말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느껴야 하는 거다. 저축해봤자 그 기분을 나중에 다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살아오면서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오목을 두는 방식에서였는데, 처음에 나는 내가 연속으로 늘어놓은 세 개의 돌 중 한 끝을 상대가 막으면, 그쪽은 포기하고 다른 곳에 돌을 두었다. 어차피 내가 하나 더 놓으면 상대가 막을 테니 말이다. 불필요한 수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오목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늘 네 개까지 늘려둔다. 어차피 상대에게 막히겠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 끝까지 늘려두지 않으면 다시 그곳에 돌을 놓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네 번째 돌로 계속 공격하는 느낌이 꽤 짜릿하다. 세 번째 돌에서 공격을 멈춘다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홍현희 말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순간 멈추지 말고 끝까지 성실하게 즐겨야 한다. 그게 오목이든, 행복을 느끼는 것이든 말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람?


어쨌든 나는 홍현희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며, 게임기의 전원을 켰다. 이번에는 끝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결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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