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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Jan 07. 2022

엄마의 자격

지독했던 새해맞이 액땜의 기록

만렙 엄마의 아킬레스 건


그럴 필요는 없지만 항상 시작은 자책이다. 어린이집에 괜히 보내서, 좋은걸 사다 먹이며 면역력을 키워주지 않아서, 안 먹여야 할 것을 괜히 먹여서, 추운데 찬바람을 쏘이게 해서, 잠자리를 뜨끈하게 데워주지 않아서 등등. 쿨하기로 하자면 우주에서 나보다 더한 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나 애가 아플 때만은 아주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게 나의 궤적을 하나하나 읊어대며 후회를 늘어놓는다. 자칭 육아 고수를 자처하며 제법 힘 안 들이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자신하는 나이지만 아이가 아픈 순간 나는 하염없이 허접한 엄마가 되어버린다.


1년에 몇 달은 콜록콜록 기침을 하거나 코를 흘리거나 하며 소아과를 전전하며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애들은 툭하면 병원에 간다는 말은 그저 예민한 엄마들의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똑닥 어플을 켜고 진료 내역을 살펴보니 2021년 한 해동안 큰아이는 총 16번 병원에 다녀왔다. 똑닥 예약을 받지 않는 이비인후과와 주말에 급히 휴일 야간진료를 하는 병원에 몇 차례 다녀온 내역들은 빠져있으니 아이는 작년에 스무 번도 넘게 병원에 간 것이다.


올 겨울에도 아이는 연례행사처럼 기침을 시작했고 코가 막혔다가 목이 부었다가를 번갈아 하며 약을 먹었다가 안 먹었다가 항생제를 먹다가 또 항생제를 바꾸고 다시 끊었다가 또 먹는, 끝이 보이질 않는 병치레를 지속했다. 저 기침은 대체 언제 멎는 것인지, 콜록콜록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이 괴롭던 것도 이제 내가 이 기침소리에 슬슬 익숙해질 지경이었던 그 무렵, 아이가 구토를 시작했다. 여행 갔다가 공항에서 돌아올 때 찬바람을 많이 쐰 것이 이유였을까. 털모자랑 목도리를 단단히 해주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걸까. 나는 또 내 엄마 노릇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 난데없이 스스로에게 가혹해지고야 만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밤


새벽녘 여느 때처럼 발작적인 기침을 하는 아이의 등을 잠에 취해 대충 몇 번 두드려 주면서 버티다 갑자기 왈칵하는 소리에 잠이 퍼뜩 깼다. 야간 기침을 한지가 꽤 되었는데 다니는 병원마다 별 뾰족한 답을 주지는 않고 그저 그럴 수 있다는 진단이다. 베개며 이불을 망친 것은 물론이고 아이는 토사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서둘러 달아나는 정신을 붙잡아 아이를 다독이고 무얼 먼저 해야 하는지 재빨리 헤아려보았다. 우선 아이를 욕실로 밀어 넣어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겼다. 그사이 후다닥 나도 토사물이 묻은 옷을 갈아입고 아이 내복을 갈아입혀 준 후 초췌한 얼굴의 아이를 소파에 앉혀놓고 엄마가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큰아이는 남편과 잠을 자고 아직 젖을 찾는 둘째 아이와 내가 잠을 자는데 주말이니 둘째는 새벽에 분유 먹여 나를 푹 자게 해 주겠다고 남편과 잠자리를 크로스한 것이 이런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이불 두 개와 깔개 한 장, 베개 4개(대체 왜 그렇게 많은 베개를 넣어두었는지 비로소 후회가 되었으나), 뒹굴뒹굴 구르는 아이가 좀 더 편히 자라고 베이비룸 사방에 둘러놓은 원형 쿠션을 모두 치우고 다시 새 이불로 자리를 꾸민 다음 아이에게 따뜻한 물을 먹이고 다시 잠자리에 누였다. 밥 한 공기가 그대로 묻어 나온 이부자리와 옷가지들을 대충 물에 헹궈 애벌빨래를 해놓고 아이 옆으로 돌아오니 그새 누운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또 왈왈왈 게워내기 시작한다. (아.. 멘붕)


다시 또 아까의 루트를 반복했다. 새 이불을 다시 내어 오면서 내일 이불 빨래할 일이 참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구토를 많이 해 식도가 자극된 것 같은데 머리를 대고 바로 누우면 위산이 역류하여 또 구토가 나올 것 같으니 비스듬한 등쿠션에 아이를 억지로 눕혀보았다. 바닥에 누워 편히 자고 싶은데 자꾸만 엉거주춤 등을 괴고 누우라 하니 아이는 심술이 제대로 나버렸다. 바로 누우면 토하니까, 이렇게 비스듬히 누워야 해, 그래야 토하지 않아. 이런 설명을 반복하면서 자꾸만 바닥으로 굴러 내려오는 아이를 올려 눕히고 또 눕히고 하면서도 나의 설명이 전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아서 잠깐 자괴감에 빠진다. 대체 이 사태를 무어라고 설명해야 아이가 불편한 잠자리를 받아들이고 우리 모두 평온하게 잘 수가 있을까? 결국 나는 아이의 힘을 이기지 못했고, 아이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행복해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더 게워낼 것도 없이 노란 위액까지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 즈음되니 망연자실, 아 이불을 까는 게 아니었다라고 뒤늦게서야 깨닫는데 이미 늦었다. 방금 망쳐버린 이불이 마지막 까는 이불 패드였다.


아예 아이를 일으켜 세워서 소파에 앉은 채로 안아 재워볼까도 했는데 내 품에서 편히 자기엔 아이가 너무 커버렸다. 등을 활처럼 휘며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웃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품을 제일 좋아했는데 부들부들. 둘이 눕기엔 등쿠션이 좀 작긴 하지만 별수 없이 내 육중한 몸을 한껏 구겨 등쿠션에 아이와 함께 몸을 누이고 굴러내려오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밤을 지새웠다. 끼무룩 조는 사이에 몇 차례 머리통이 잠자리를 이탈하는 통에 또 아이는 무엇인가를 게워 올렸지만 이제는 소리만 요란하고 맑은 침을 토해낼 뿐이라 그냥 슥슥 닦아내고 다시 잠을 청했다. 베이비룸 옆으로 물티슈며 수건이며 휴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1월 1일 새해가 그렇게 밝았다.


그리고 그 후...


속을 모두 비워내고서야 겨우 지쳐 잠든 아이가 잠에서 깨자마자 부랴부랴 휴일에도 하는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갔다. 신년 벽두부터 감기환자가 이리도 많은지 병원은 대기환자로 장사진을 쳤다. 피곤함과 컨디션 난조로 온몸을 뒤트는 아이에게 만화도 보여주고 말도 안 되는 노래도 불러줘 가며 긴긴 대기시간을 버텨 진료를 보니 에구 기침이 심하네요 항생제를 먹이세요 하고 유백색의 냉장보관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주말이나 야간에 언제든 방문할  있는 병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내원할 때마다 항상 같은 항생제를 처방받는데  번도 차도를 보인적이 없어, 결국 평일에 인근 소아과나 이비인후과에 가서 다른 항생제를 처방받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기침은 잦아들지 않고 낮에도 먹는 족족 올려내더니 이제는  이상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를 상실해 버린   늘어져 이불을 덮고 눈만 꿈벅이기 시작하는 것이 참으로 가여워 미칠 지경이다.

눕지 못하게 했더니 계속 도망다니다가 세탁하려고 쌓아둔 쿠션 위에 지친 몸을 누이고 한참동안 주방 바닥에서 저렇게 잠을 잤었다.

약을  먹을 정도로 토한다면 입원도 고려해보아야 한다는데 인근 대학병원이나 아동병원에 입원도 생각해보지만 말은 통하지 않고 힘은 장사인 나의 아들이 수액줄을 우지끈하고 뽑아낼 광경이 상상되는 순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입원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집에 4개월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까지도 생각이 미치기 전이다.


그나마 기침을 빨리 잦아들게 했던 단골 이비인후과를 방문하여 제일 잘 들었던 기침 가래약을 처방받고서야 아이의 컹컹거리는 기침 발작이 겨우 멈추었다. 입맛이 돌아왔는지 된장국에 밥을 한 그릇 먹어 치웠고, 오후께가 되자 좋아하는 우유를 달라고 팬트리를 번쩍 열어젖히기도 했다. 토할 때 유제품은 금하라고 했는데... 어젯밤부턴 토하지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우유를 한 팩 쥐어준 것이 아뿔싸. 거실에 너저분하게 벌려져 있던 장난감과 책까지 모두 토사물 세례를 맞았다.


흔히 교감 신경을 싸움 도망 반응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사실 아이가 아픈 이 응급상황에 가장 나의 교감 신경이 활성화됨을 느낀다. 둘째 재워놓고 게으르게 소파에 누워 아이가 거실에서 사부작 거리면서 노는 것을 눈으로만 지켜보는 엉덩이 무거운 엄마이지만 거실이 토사물로 뒤덮인 이 응급상황에 나는 마블의 어떤 히어로보다도 기민하고 굳세고 무엇보다 침착하다. 구토하는 아이에게 가장 금물은 엄마가 놀란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침착히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아이를 씻기고 달래고 구석구석 묻은 구토의 잔해물을 닦아내면서도 지칠 틈이 없다. 아픈 아이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던 것은 잠시, 이 순간만큼은 늘상 반복하는 자책을 접어두고 나 스스로를 믿고 강해져야 한다. 이제 이런 시국에는 도라지청을 잘 먹였어야 했나 같은 종류의 회한은 시간낭비에 불과할뿐더러 이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괴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입에서 우유를 무시무시하게 뿜어낸 통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 안타까워 며칠 사이 부쩍 여윈 아이의 볼을 부비며 나도 마음을 고르고 있는데 아이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놀랐지? 괜찮아~"라고 건네는 한 마디가 너무 귀여워 심란함이 눈 녹듯 지워졌다. 나의 말 느린 아기는 아직 이 정도 대화를 할 수준은 아니고 그저 엄마가 자기를 씻기면서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라고 반복해 이야기해준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한 것에 불과하지만 아무렴 어때.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지쳐 서로의 신년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물을 새도 없이 한 해가 밝아오고 이렇게 우리는 나이를 한 살 더 먹고야 말았다. 그러나 남편도 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새벽녘 토 묻은 빨래와 숨죽인 전쟁을 하며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너도 나도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처럼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 부부의 소망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집 앵무새 때문에 가슴 벅차게 행복하고, 또 시큼한 아기 토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하루를 보낸다. 내일은 그저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이기를(제발 이 구토가 멈추기를) 소소하게 바라느라 거국적인 신년 소망을 차마 빌지 못하였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러했다. 그것이 2022년, 34살을 맞는 나의 신년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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