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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Feb 13. 2020

둔감력을 키워라

과거 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 날은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위층 상사는 회식을 하다 다른 남자상사에게 나를 혼자 두고 가라고 지시를 내렸고, 나는 남자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자 상사는 나에게 남아 있으라며 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당시, 나에겐 큰 프로젝트가 있었고, 고위층 상사의 말 한 마디면 프로젝트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 자리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뇌가 복잡한 상황에 이르렀다. 거기다 직속 남자 상사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더욱 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고위층 상사와 나는 둘이서 시간을 보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 후에도 고위층 상사는 회사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윙크를 하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내 근처로 오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왜 바로 회사에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다음날 바로 남자상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남자 상사는 다시는 고위층 상사와 술자리를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야기 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당시에 나는 몇개월의 백수 시간을 지나 일을 시작해 당장 돈벌이가 급했고, 신체적으로 큰 상처가 없고, 남자상사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금 내 상황에서 그거면 된 것 아닌가 싶었다. 더 일을 크게 만들기에는 나의 멘탈이 약해져 있었다. 경찰서까지 가는 것도 고민했지만 내가 그 과정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너무 나약하고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 일하려 했지만, 고위층 상사를 마주칠 때 마다 나는 괴로움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예민함은 극도로 치달았다. 일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결국 나는 그렇게 회사를 나와 다시 백수의 길로 들어섰다. 


만약 내가 예민함을 덜어내고, 둔감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백수의 길을 다시 걷는 것도, 사람들의 시선도, 내가 일하던 프로젝트도, 경찰 조사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모두 둔감하게 받아 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조금 더 덜 괴로운 상황에 놓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걸 예민하게 받아 들이는 게 아니라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다면...

'내 잘못도 아닌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때?'

'경찰이 헛소리 하면 말로 이기는거야'

'까짓, 다른 곳에서 더 성공하면 되지'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상황을 처리 했다면, 내 스스로에게 덜 부끄럽고 덜 창피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다른 이들의 반응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 둔감력은 나이를 먹어서도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좋은 의미로 정신을 안정시키고 좋은 기분을 유도하며 신체적으로는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꾸지람을 놓을 때 둔감력이 좋은 A는 '네,네' 대답을 하며 한 귀로 흘리는 한편, 예민함이 넘치는 B는 '네,네' 해도 속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해보자. 과연 누가 더 오래 그 회사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A일 것임을 모두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A는 직장 상사의 꾸지람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아마, 꾸지람을 들었어도 뒤를 돌아서면 동료들과 웃으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신의 업무에 집중할 것이다. 

 

반면, B는 꾸지람을 들을 이후에 계속 상사의 말을 곱씹으며 얼굴을 굳히고, 일을 하려고 해도 큰 집중을 하지 못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B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B는 스트레스를 참다가 위경련을 일으키거나, 상사와 의견 충돌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이렇게 둔감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과 그리고 당사자의 건강에도 끼치는 영향이 상당히 다르다. 나 역시 그 상황에서 둔감력을 발휘했다면 몇 년동안 혼자 봉합해도 봉합되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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