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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Mar 13. 2020

시간이 흐른다는 것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늘했던 날씨와 다르게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이었다. 지인을 만나러 간 곳에서 예전에 알던 한 사람을 만났다. 나를 성추행했던 사람이었다. 하필 많고 많은 날 중, 햇살에 행복한 미소를 짓던 날 마주치다니.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1초가 1분같이 느껴지는 그 순간, 나는 몸을 돌려 그 사람에게서 거리를 뒀다. 하지만 알아봤겠지 나인지. 하지만 아무 생각 안했겠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그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고 갈기갈기 찢겨 졌던 건 나뿐이었으니 말이다.  


 오래전 그 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성추행한 상사라는 이름의 권력 앞에 무너져 내리던 날. 그 날 이후로 상처받았던 내 마음은 한동안 아물지 않았다. 아니 오래도록 생채기가 나 그 위에 딱지가 지고, 떨어지고 상처가 아무는 동안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더 강하게 거부하지 않은 내가 미웠고, 처벌받도록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내가 미웠다. 그렇게 나는 간혹 내 자신에 대한 혐오로 스스로가 싫어지는 그런 날도 겪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이렇게 마주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그 상처가 보이지 않는 듯 단단한 껍데기가 내 상처위로 생겨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막상 그 상처와 마주앉고 보니 정말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미움도, 원망도, 분노도 그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잠깐의 스침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지만, 나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과거에 그런 행동을 한 나쁜 사람. 그렇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것 인가보다.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던 일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것 인가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마주쳐도 몸안의 세포들이 덤덤해 지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것 인가보다.

어느 순간을 떠올려도 무감각 해지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것 인가보다

과거의 힘들었던 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것 인가보다 

이제 과거를 훌훌털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것     


나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런 것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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