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월 Nov 23. 2020

아무 의미 없습니다만...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네가 알아서 생각해. 일일이 설명해 줘야해?’

사람들은 말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면서 뜻을 만들어 낸다.

당장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만 잠시 들여다보고 있어도 개인들이 올린 온갖 사건들이 쉴 틈 없이 올라온다. 그 속에서는 또 화자와 상대방의 행동과 말의 의미를 추측하며 비난과 옹호하는 댓글들로 숨을 쉴 틈이 없다.


보다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이야기를 보게 되기도 하지만, 과한 의미를 가져다 붙인 뒤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나도 그저 내 식으로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단정 지은 후에 판단을 한 건 아닐까.


나도 어린 시절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다.
나는 그냥 단어 그대로, 말 그대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그 안에서 숨겨진 의미를 자기들끼리 찾아내어 나에게 물어보는 경우 말이다.

나는 의미를 담아 한 이야기가 아닌데, 타인이 그걸 문제 삼아 이야기를 했을 때는 너무나 괴로웠다. 마음대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괴롭고, 나의 설명에도 이해를 할 생각 없이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이야기에 괴로웠다.

영화감독에게 영화 장면에 이런 의미가 숨겨있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런 게 아니었는데 해석을 보고 알았다거나 문학 문제를 보여주면 그 글을 쓴 문학자도 정답을 고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유머처럼 또는 하나의 일화처럼 간간히 전해져 온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 예능방송에서 한국 국어 교육의 문제점으로 문학 작품의 ‘답을 찾게 하는 것’을 꼬집었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보는 것이지
  작가가 숨겨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니다”

“시인들은 자기의 시 문제를 풀어보면 틀리기도 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신의 의도를 타인이 해석해 ‘답’을 결정해 놓다니 말이다.

나는 문득 이런 교육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기에 모든 말에 의미를 찾고 그 ‘답’을 찾아 해석을 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린다. 때론 말한 이의 생각을 무시한 채 말이다.

물론,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은 나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론 말 그 자체로의 의미를 믿어주고 해석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이 숨겨진 의미를 담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_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