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 땅 밑이 저승이다'
이런 속담이 있다. 죽음이나 저승이 먼 데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죽음의 선을 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죽음을 맞이 하는 게 좋을까?
나는 내 주변 지인들에게 간혹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면 지인들은 왜 그런 말을 하냐며 부정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게 꼭 나쁜 것일까? 오히려, 내 인생에 대한 태도를 재정비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나는 죽음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를 내 인생에 의미로 두고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부끄러워 이야기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게 됐다. 다른 것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고, 지인들과의 관계도 끈끈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예의를 지키는 관계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내 죽음이 어떤 죽음이 됐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죽은 뒤 화장을 한다거나, 축 처지는 장례식장 분위기가 싫기에 조문을 오는 사람을 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장치를 생각하거나, 유품이 될 물건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거나,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하지 못한 말이 없는지 고민한다.
혹자는 너무 이른 나이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른 것일까? 이상하게도 나는 학창 시절부터 죽음을 생각해왔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1분 전에 살아 있던 사람이 사고로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 그때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 아플지,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슬플지...
한때는 왜 나는 다른 평범한 학생들과 다르게 이런 걸 깊이 생각할까 싶었던 적도 있다. 왜 매사 모든 걸 다 깊이 받아들일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이런 내가 싫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이런 나였기에 지금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신념을 가지고, 인생의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이것을 해봐라.
아! 물론 나의 견해일 뿐, 정답은 아니다.
가족들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봐라. 진부한 이야기처럼 생각되겠지만,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건 많은 이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시행해온 결과다. 처음에는 손발이 오글거릴 수 있지만 매일 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듣는 가족들도 처음에는 낯설어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 온 몸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간의 진심 어린 사랑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내 마지막을 생각해봐라. 어떤 죽음을 맞이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경우에서건 후회로 사로잡힌 망령이 되어 이승을 떠돌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이루고 죽고 싶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들이다. 내가 바라던 꿈을 이루고,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어서 집을 사고, 가정을 이루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과 투닥거리며 삶을 살고 싶다.
마지막을 생각하다 보면 우울할 것 같다고? 그렇지 않다. 나는 더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왜냐면 앞에서 말할 것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들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 하고 싶은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신의 삶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그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