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헤어진 날이었다.
어느 슬픈 영화처럼 비가 내렸다.
나는 저런 이별을 겪지 않을 거라 믿었다. 21세기에 신여성답게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오른손에는 우산을 들고, 왼손으로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눈을 가렸다.
마치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눈을 가리면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는 거라 생각하듯이.....
나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꽁꽁 숨어버렸다.
제발 날 보지 말아 줘
날 찾지 말아 줘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는 지금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
발걸음을 떼면..... 손을 눈에서 떼면....
나의 슬픈 민낯이 드러날 테니까
제발 그냥 스쳐 지나가 줘
어떤 슬픈 여자가 울고 있을 뿐이야
왜 울고 있을까 상상하지 말아 줘
그냥 나도 모르게 흐르는 물일 뿐이야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동안 시간을 계속 흘러가
거칠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찾아들어
비에 움츠러들어있던 나뭇잎들도 다시 기를 활짝 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톡톡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이별을 겪은 여자고
이 공간 속에 사라지고 싶은 여자고
오랫동안 잊어버린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여자였다.
더 이상 눈으로 빠져나갈 물이 메말라버리는 것처럼 눈물이 잦아들었다. 그에 맞춰 빗줄기도 잦아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에 손을 내리고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뜨면 어떤 하늘이 나를 반겨줄까?
살포시 눈을 뜨니 좀 전에 비를 쏟아 내린 하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은 하늘이 시선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곧 나는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구름 사이로 어느 때보다 선명한 무지개가 나를 반겨주었다
하늘의 빛을 다 안겨주는 느낌이었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내 안에서 반짝 빛이 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은은한 물색의 빛으로 바뀌었다. 이 빛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내가 빛을 느끼는 이상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때로는 빨갛게, 파랗게 물들 수 있지만 여전히 빛이니까. 나는 내 안의 빛을 아름다운 무지개 색으로 물들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밝고 특별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생겼다.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니 어두컴컴하던 세상이 청명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미소를 띠며 앞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