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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Mar 15. 2022

[단편] 무지개

그와 헤어진 날이었다.

어느 슬픈 영화처럼 비가 내렸다.

나는 저런 이별을 겪지 않을 거라 믿었다. 21세기에 신여성답게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오른손에는 우산을 들고, 왼손으로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눈을 가렸다.

마치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눈을 가리면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는 거라 생각하듯이.....

나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꽁꽁 숨어버렸다.


제발 날 보지 말아 줘

날 찾지 말아 줘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는 지금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

발걸음을 떼면..... 손을 눈에서 떼면....

나의 슬픈 민낯이 드러날 테니까


제발 그냥 스쳐 지나가 줘

어떤 슬픈 여자가 울고 있을 뿐이야

왜 울고 있을까 상상하지 말아 줘

그냥 나도 모르게 흐르는 물일 뿐이야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동안 시간을 계속 흘러가

거칠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찾아들어

비에 움츠러들어있던 나뭇잎들도 다시 기를 활짝 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톡톡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이별을 겪은 여자고

이 공간 속에 사라지고 싶은 여자고

오랫동안 잊어버린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여자였다.


더 이상 눈으로 빠져나갈 물 메말라버리는 것처럼 눈물이 잦아들었다. 그에 맞춰 빗줄기도 잦아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에 손을 내리고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뜨면 어떤 하늘이 나를 반겨줄까?

살포시 눈을 뜨니 좀 전에 비를 쏟아 내린 하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은 하늘이 시선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곧 나는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구름 사이로 어느 때보다 선명한 무지개가 나를 반겨주었다

하늘의 빛을 다 안겨주는 느낌이었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내 안에서 반짝 빛이 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은은한 물색의 빛으로 바뀌었다. 이 빛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내가 빛을 느끼는 이상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때로는 빨갛게, 파랗게 물들 수 있지만 여전히 빛이니까. 나는 내 안의 빛을 아름다운 무지개 색으로 물들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밝고 특별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생겼다.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니 어두컴컴하던 세상이 청명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미소를 띠며 앞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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