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선 절망의 시작
학창 시절 장거리 달리기 기억하시나요?
고통과 괴로움이 끝나간다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그림자 뒤로
또 다른 절망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다닌 지 5년이 되었다.
(이하 정신과로 지칭)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절망의 절망의 절망 속을 헤매고 있었을 때,
나 자신이 이상해져 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수면 아래로 잠겼을 때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나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왜 그때서야 정신과를 찾아갔냐고?
정신과에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정신과에 익숙하다
학창 시절부터 엄마가 정신과에 다녔기 때문에 숨쉬기 힘든 그 공기를 알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내 정신건강에 예민했다. 세상을 똑바로 살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세상이 건네는 회오리바람을 유연하게 견딜 힘이 없었다.
곧은 나무처럼 그저 뻗뻗하게 서 있던 것 같다
그 결과,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
다행히도 처음 만난 선생님과 지금까지 함께 상담하고 치료를 하고 있다
계속 반복되는 고통과 희망의 시간
이 시간을 말하는 건 참 어렵다.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저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
그 시간을 지나면 한 걸음 나아갈 뿐이다.
학창 시절에 달리기를 참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은 뛰기 싫어하는 장거리 달리기도 즐거웠다.
헉헉 대며 숨이 차오를 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더 뛰면 어느새 골인지점이 다 달았다.
해냈다는 그 마음이 그저 기뻤고, 즐거웠다.
그런데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지만
글쎄... 마라톤 결승점이 죽음이라면 맞는 것도 같다.
나에게 인생은 꿈이다.
장거리 달리기든 마라톤이든 결승점에 다 달았는데
다시 달리기 경기를 시작해야 하는 악몽...
꿈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계속 꾸는 것처럼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어 절대 끝나지 않는 그런 시간들 말이다.
괴로운 건 그 시간들이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담아내고 있어서다.
다시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겪어내야 하니까...
그래서 그저 피할 수 없는 절망을
이 전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힘을 키워낼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말이다.
나는 정신과에서 그 힘을 배우고 있다.
어느새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나를 발견했던 것처럼
절망을 마주할 때도 조금 더 여유롭게 맞이하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올 거라 믿고 싶다.
또다시 다가올 절망에게 쓰러지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