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와 산 지도 어느 새 3년이 넘어 간다. 종종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는 "한국 다시 가고 싶지 않아? 그립진 않아?" 사실 내가 감정이 풍부하거나 감성적인 무드에 종종 젖곤 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고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껴본 적은 없다. 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듯 타향살이 하며 느끼는 아쉬운 감정들을 다른 새로운 경험들로 채우곤 한다. 한식을 먹고 싶을 때 필요한 재료가 없으면 비슷한 대체품으로 대신하듯이 자연스레 떠나간 인연의 공백과 한 순간 생겨난 마음 속 텅빈 곳도 언젠가 다시 메워지기 마련이다.
다만 이따금 불쑥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그리움은 평상시 무덤덤한 나조차도 찌르르하게 한다. 어느 날 저녁엔 샤워를 하는 도중 갑자기 한국 우리 집 화장실이 생각났다. 지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대충 말리고 나가면 엄마가 사과를 깎아 주겠지. 그러면 우리는 TV앞에 앉아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잠이 올 때까지 거실에 모여 있을 거야.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부드러운 극세사 이불을 덮고 창문을 조금 열어 놓은 채 잠이 들겠지.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지만 샤워를 다 마치고 나가도 나를 기다리는 사과는 여기 없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은 슬프게 한다.
이렇듯 사소한 그리움은 정말 예고 없이, 일상 생활을 하다가 문득 찾아 온다. 혼자만의 저녁 식사를 하다가 집에서 주로 쓰던 둥근 쇠젓가락을 물끄러니 쳐다 봤을 때, 아빠가 기르는 식물과 같은 종을 우연히 슈퍼에서 발견했을 때, 다 나가고 아무도 없는 플랫에서 자려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다양한 김치볶음밥 레시피를 아무리 시도해봐도 엄마가 해주는 맛이 나지 않을 때....
집 떠나 멀리 살면 자연스레 느끼는 감정인지라 이제는 파도처럼 갑자기 몰려와도 덤덤하긴 하다. 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약간 저릿저릿해지는 마음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타향살이 팔자가 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수 밖에. 다행인 것은 우리가 스스로 감정이 매몰되어 무너지지 않는 한, 우리에겐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힘을 보태줄 새로운 경험들과 인연들을 늘 찾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