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flies 떠오르는 생각 주저리 주저리 써 내려가기
어느 덧 이탈리아 산골 마을에 온 지도 두 달 반이 넘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건지, 내가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할 만큼 게으른 건지...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듯 싶다. 해야 하는 일들을 마감 직전까지 미뤄야 하는 성미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으니까. 생이 끝나는 날까지도 끈적하게 손에 묻은 밀가루 반죽처럼 끝내 털어버릴 수 없겠지.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봐야 결국 감수해야 할 내 모습이다. 그래도 꼬박꼬박 할 일을 마감일에 맞추어 다 해내지 않는가. 적어도 미루는 동안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어차피 안 할 거 그 시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2019년 대학원 첫 학기는 적응한다는 핑계로 나름 이유있는 여유를 부렸다. 몇몇 친구를 사귀고 수업을 적당히 들었고 가끔 파티도 다녔으며 간간이 의미 없는 데이트도 했다. 한국을 떠난 지 1년 반이 넘어가 한 번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을 기회 삼아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 여파로 모든 국경이 예고없이 폐쇄되었다. 물론 EU도 마찬가지. 그 덕(?)에 계획했던 한 달 반보다 훨씬 오래 한국에 머물렀다. 미루고 미루다 시작된 2020년 여름 학기는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1학기 때보다 더 게으른 학생이 되었다. 3학기 때는 모든 수업이 다시 정상화되고 카이로에 교환 학기를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로 7월에 독일에 다시 돌아와 꾸역꾸역 과제를 마치고 8월엔 European heritage volunteers project에 참여했다.
바람과는 달리 코로나의 여파는 더욱 거세어져 갔고 결국 카이로엔 가지 못했다. 다시 전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BTU가 아닌 Helwan University의 강의를 들었다는 것. 그 와중에 저축한 돈을 그냥 까먹을 수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장학금을 받았고, 알바도 열심히 구했다. 내 마음껏 구직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홈오피스 근무가 가능한 콜센터 알바는 2주 만에 영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회사의 결정에 따라 그만 두게 되었고, 마트 물건 진열 알바는 하루 프로베이션 워크 후엔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독일에서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으며 구직 활동을 지속했다.
이탈리아에 인턴으로 오게 된 이유는 어떻게 보면 참 '어이'가 없다. 당시 데이트하던 남자와 한창 잘되고 있던 터라 더욱 독일을 떠날 생각이 없었는데 이 남자가 얼토당토 않는 찌질한 이유로 그만 만나자고 통보를 했다. 그 후로 내가 꼭 독일에 있을 필요는 없지... 더 넓은 세상으로 돌려보자는 생각이 들어 Erasmus+인턴십을 찾아보았다. 이탈리아에서 인턴을 하다가 돌아온 친구의 조언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어찌보면 깨진 썸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 무급 인턴 자리는 구하기가 쉬웠다. 터키 이스탄불, 핀란드 헬싱키, 이탈리아 베르골로, 총 세 군데에서 오퍼가 왔고 마침 큰 도시가 싫었던 터라 결국 이 산골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 큰 도시에서 나고 자라 작은 마을에서 살아 본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 베르골로에서 산 지 두 달 반이 넘은 지금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 자신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게 되었고. 나는 절대 대도시 인간이 아니라는 점.
7월 말에 인턴이 끝나면 8월에는 어디론가 떠날 텐데 그 어디가 어디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직. 나를 불러주는 곳 어디든지 가지 않을까? 뭐 독일로 다시 돌아 갈 확률이 제일 높긴 하겠지만. 끝내 어딘가에 정착하게 될 텐데 그 장소가 어디고 시기는 언제일지는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물처럼 흐르는 대로 살면 되겠지. 아참,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바다 근처에 꼭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