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람의 해발 600m 산골 적응기
나는 내가 도시 사람인줄로만 알았지~
2017년, 첫 해외살이의 꿈을 안고 간 독일 Karlsruhe는 내게 너무나도 작게만 느껴졌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만 25년을 넘게 산 뼛속까지 오만한 대도시인에게 인구 30만의 도시는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한 (!) 장소였다. (지방 분권의 모범국인 독일에서 인구 30만 도시는 사실 큰 도시이다.) 밤 열 시만 지나도 침침한 가로등이 줄 서 있는 거리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대학이 열 개 남짓 모여 있는 젊음의 도시인지라 바와 클럽이 모여있는 중심가에서 늦은 시간까지 술에 취해 파티를 즐기는 대학생들 무리 정도가 도시의 생동감을 전달해주었다. 한국에서조차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내가 대도시를 벗어나면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처음에 Karlsruhe에 도착했을 땐 멕시코 시티에서 온 친구와 함께 '작은' 도시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두어 달이 지나 어느 정도 적응할 무렵에서야 중소 도시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거두기 시작했다. 도시 어딜 가나 30분 안쪽으로 목적지에 도착했고 낑기지 않는 대중교통과 한산한 거리의 참맛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티 센터에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는 일 없이도 도보에서 충분한 공간 확보가 가능했고 조용한 공원에서 종종 산책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이사한 Bochum 또한 Karlsruhe와 비슷한 사이즈의 도시였다. 이미 중소 도시의 적당한 편리성과 한산함에 매료되어 번잡스러운 대도시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형 병원, 극장, 영화관, 쇼핑몰 등 편의 시설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높은 인구 밀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Bochum은 근처에 Dortmund, Essen, Düsseldorf 등 여러 도시들이 밀집해 있어 근교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니기에도 적합한 도시였다. 공업 도시였던 만큼 도시 외관 자체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지만 (!) 큰 불편함없이 10개월 정도를 살았다.
가장 최근에 살았던 Cottbus는 인구 10만 도시로 앞서 언급한 두 도시의 3분의 1 사이즈 수준이었다. 처음 Karlsruhe에서 느꼈던 감정처럼 처음 Cottbus로 이사왔을 땐 도시가 매우 작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나 영화관 등 편의 시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지역 경제를 책임지다시피하는 대학교가 없었더라면 도시의 인구 유출과 경제 침체가 심각했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이 때는 큰 도시에서 살 때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겪기도 했다. 배달 앱을 켜면 나오는 겨우 열 개 남짓한 식당들... 한 시간 반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가야만 이용할 수 있는 영화관... 한인마트는 커녕 작디 작은 아시아 슈퍼마켓 하나 에서 겨우 살 수 있는 맛김치... 저녁 6시면 문을 닫는 카페들...
Cottbus가 내가 살아본 가장 작은 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웬걸.. 우연히 발견한 인턴십 기회를 잡아 새로 이사하게 된 곳은 무려 해발 600m 고도의 산골 마을이었다. 인구는 30명 남짓. 마을의 끝에서 끝까지 도보로 20분도 안 걸리는 작디 작은 곳이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은 차를 타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 15분 정도 내려가면 도착하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대중교통?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 시설? 관광객에 의존하는 비싼 레스토랑 두 곳만 존재한다. 큰 병원은 당연히 없다. 근처 치과엔 엑스레이 기계조차 없어서 사랑니 진료를 받으려면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큰 도시에 가야 한다. 그럼에도 한적한 이 산골 마을은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집에서 도보로 1분 걸리는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노래 한 곡 듣는 동안 올라갈 수 있는 언덕에 쏟아지는 노을빛은 언제나 아름답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가득했던 숲이 어느새 파릇한 이파리를 자랑하며 녹색으로 물들고 있다. 곧 들판에는 활짝 핀 노란 꽃들이 가득할 것이다.
도시와 시골 둘 중에 어디가 더 좋은지 꼽으라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각각의 장단점과 매력이 너무나 뚜렷한 장소들이니까. 다만 두 곳 모두에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쥘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몇 개의 장소를 체험해 볼 수 있을지, 최종적으로 어디에 정착할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으로 어딜 가나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 늘 바라온 것이 있다면 바다 근처에 살아보는 것! 언젠가는 꼭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우선은 마무리까지 행복한 산골 생활을 꾸려 나아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