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다가오는 폭풍우를 보고도 모른 척 등돌려 버리기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신조어를 하나 발견했다. '노잼 시기' 뭘해도 감흥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위 보이지 않으며 손 하나 까딱하기 귀찮아 생존에 필요한 활동만 마지못해 겨우 하는 때. 이 노잼 시기는 이렇다 할 경고 없이 불쑥 인생에 끼어 들어 사람 마음을 한 번씩 휘젓고 방랑객마냥 어느 순간 휙 떠난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얕은 도파민 자극만을 추구하는 영상들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딱 노잼 시기 증상과 비슷하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저번 주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마감일이 되어서야 꾸역꾸역 해야할 업무를 겨우 마치고, 일이 끝나고 나면 저녁을 먹고 침대에 앉아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나 무한도전 유튜브 클립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 영상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컴퓨터와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무기력하고 특별한 욕구나 자극없는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저분한 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 탓에 아직 청소나 빨래 등 기본적인 살림을 놓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을 뻔한 나를 손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활동하도록 독려한 매개체가 가사 활동이라니. 아이러니하다. 혼자 생활하기 전 가족과 함께 살 때 가장 귀찮고 성과 없는 일이 살림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 일이 지금은 내가 한없이 깊은 무기력증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최전방에서 도와주고 있다.
저번 주중 내내 날이 흐리고 비가 왔던 걸 핑계 삼아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랫층 사무실에 내려가는 것조차 귀찮아서 부엌 식탁에서 일을 했을 정도였다. 날이 추워 가라앉았던 편도가 다시 부어오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 마음먹으며 아스팔트에 붙은 껌딱지마냥 집에만 찰싹 붙어 있었다. 잠깐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정도가 바깥 공기는 마시는 시간의 전부였다. 토요일 오후까지도 안개가 잔뜩 끼고 구름이 걷히지 않다가 갑자기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날이 개기 시작했다. 집에만 붙어 있을 핑계가 사라져 더 이상 실내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몸을 이끌고 나와 5분 정도 언덕을 올라가 해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제는 문을 열지 않는 12세기의 석조 예배당 앞에 서서 구름과 햇빛이 뒤섞인 오묘한 절경을 감상하고귓가에 스치는 서늘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사실 이 정도 사치를 누렸으면 이제는 '노잼 시기'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앞서 언급했듯 이는 딱히 이유가 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금방 떠나는 것도 아니다. 최후의 발악으로 일요일엔 아침부터 등산을 했다. 두 시간 정도 새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내 안에 있는 회복 용수철이 뿅하고 튀어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비가 오고 난 뒤라 저 멀리 산 너머 알프스가 보이는 풍광이 눈 앞에 펼쳐졌지만 그래도 집에 오니 다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잼시기엔 아무 것에도 자극받지 못하고 감흥이 없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하필 이 시기에 일과 개인적인 용무들이 첩첩산중으로 겹쳐 있어 더욱 부담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무기력증이 더욱 심해지는 지도 모른다. 눈 앞에 놓여진 장애물들은 많은데 쉽게 해결되지는 않으니 그냥 회피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뭐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하면 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등 딱히 와닿지 않는 희망찬 문구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걸 실천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나도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내 방식대로 비틀즈의 노래처럼 Let it be 정신을 떠올리며 이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노잼 시기를 벗어나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순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