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서른살의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까?
한때는 스무살이 넘어 서른살이 되면 인생 참 별 볼일 없어지는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사실 그때는 나이듦 뿐 아니라 모든 새로운 것들이 두렵기도 했었다. 니에게 변화는 두려운 것이었고,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늘 너무 잘나보이는 남자들은 사실 매력적이었음에 틀림없음에도 연애대상에서 제외시키고는 했다. 그래서 별로 이쁘거나 잘나지 않아 보이는 여자들이 멋진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보면 쟤는 돈이 많을꺼야 라는 말도 안되는 비하를 하며 스스로를 비참에 빠지지 않게 거짓말을 해왔던 것 같다.(사실은 그로 인해 더 비참한 상황에 빠졌을 테지만)
아무튼 연애 뿐 아니라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해놓고는 제대로 해낼 수 없을거라는 부담감에 며칠전에 다리를 다쳤다며 거짓말을 하고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 그건 대학때니까 10년도 훨씬 전이구나. 아무튼 그러한 못났던 내가 왜 그랬는가를 이제는 자존감의 결핍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 파괴적 행동이 나타나는 상황이나 방식에 관계없이, 그런 행동의 동기는 하나같이 낮은 자존감이다. 낮은 자존감은 정반대되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간다. -자존감의 여섯기둥 P.47
나는 행복할 자격이 없어, 이런 성공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라는 무의식에 자리잡은 낮은 자존감은 행복한 순간에는 웬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했고, 그런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실제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적도 있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소위 핵심부서라는 재무팀에 근무하면서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돼?라는 부담감을 적지 않게 가졌던 것 같다.
이러한 낮은 자존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순간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공부해서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고, 그러한 점은 순간적인 자신감을 좀 높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순간으로, 양육내내 나는 과연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가 라는 회의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예상했던 만큼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는 사실과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집순이로 살아가는 상황이 그나마 남아있던 자존감도 더 깎아버리게 되었다.
바닥까지 이르자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접한 인생공부 팟캐스트, 실제로 책을 읽으며 삶이 변화했다는 간증들을 들으며 나도 책을 한권 두권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주로 소설만 보던 어린 시절과, 육아서만 보던 양육시기를 지나고, 뭔가 나를 위해 제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책이라는게 참 신기한게, 그러한 낮은 자존감들을 점점 높이는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해주었다. 데이터와 믿을만한 연구결과들로 뒷받침된 마인드셋, 그릿, 일만시간의 재발견, 완공 등등의 책들은 나는 루저도 아니고 잠재력도 충분하며 다만, 그동안 너무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해줬다.
이제는 새로운 변화가 두렵지 않다. 새로운 환경도 오히려 반기게 된다. 조금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회복탄력성도 꽤 높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한달 자존감을 시작하며 읽게 된 '자존감의 여섯기둥'은 그러한 나를 완전히 자존감 높은 상태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자존감은 자신이 삶에서 마주하는 기본적인 도전에 맞서 대처할 능력이 있으며, 행복을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적경향이다. -자존감의 여섯기둥 p.61
책에서 정의한 자존감의 정의처럼 나는 내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고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이제는 믿게 되었다. 그래서 10년전의 서른살의 나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너는 위기를 잘 극복해냈고, 행복하게 살게 될꺼라고. 그럴만한 가치라 있는 사람이니 너를 더 사랑해주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한달자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