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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싸우던 이들

퇴마록退魔錄을 다시 읽고

by 비둘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요?"

"그건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 덕과 도를 쌓고, 자비심을 품어 남을 가련히 여기는 선한 마음을 갖고 용기를 가지는 것만이, 작지만 가장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커다란 운명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퇴마록 중에서>



공부만 아니면 다 재밌던 시절이 있었다. 교과서만 아니면 책도 재밌었다. 교과서 아래 숨기고 몰래보던 책들이 많다. 절대 들키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가끔 선생님께 들켰다. 선생님이 되고 보니 알겠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간 날도 들키지 않은 게 아니라 선생님들께서 봐주셨다는 것을. 교과서 아래 숨기기엔 책은 너무 두껍다.



퇴마록도 그런 책 중 하나다. 내가 산 책은 아니었다. 친구에게 빌린 책이었다. 1권부터 제대로 본 것도 아니다. 친구가 가져온 책 중에서 아무 책이나 하나를 빌려 읽었다. 내용이 뒤섞여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냥 읽었다. 말도 안 되는 가상의 세계.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령. 은밀한 수련을 하는 여러 밀교. 악마를 물리치는 영적인 힘. 악령과 싸우는 박 신부, 준후, 현암. 그땐 이 책이 가진 지위를 몰랐다. 오컬트라는 장르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은 수업 시간이 너무 짧았다.



퇴마록을 빌려준 친구와 다른 고등학교를 갔다. 그 이후로 퇴마록은 읽지 않았다. 기억에서도 잊혀졌다. 얼마 전 퇴마록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마록이 뭐였더라? 들어본 것 같은데? 예고편을 봤다. 거대한 몸의 신부님을 보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분명 박 신부라는 것을.

퇴마록이 내가 몰래 보던 그 책이라는 것을.



퇴마록을 다시 읽고 싶었다. 인터넷 서점에 검색해보니, 모두 절판되었다. 중고서점, 중고나라, 당근마켓에도 검색했다. 정가보다 비싼 가격이 아니면 구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볼 방법이 없나 궁리했다. 퇴마록을 웹툰으로 각색한 작품이 있었다. 광고를 보면 하루에 5편 정도씩을 볼 수 있었다. 첫 에피소드를 봤다. 내가 아는 퇴마록이 맞았다. 웹툰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조금 내 기억과 다른 부분들도 있었지만, 어릴 때 봤던 그 감정이 되살아나는 좋은 작품이었다. 난생 처음 웹툰을 보려고 캐쉬 충전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지만 참았다. 여전히 매일 광고를 보며 5편씩 읽고 있다.



어제 읽을 책을 찾으려 밀리의 서재를 뒤적거렸다. 화려한 표지의 책에 시선이 멈췄다. <퇴마록 국내편>이었다. 이우혁 작가가 쓴 퇴마록이 맞았다. 애니메이션 개봉 기념 특별판이라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읽었다. 어렸을 때 숨죽여 읽던 그 책을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밀리의 서재에 아직 국내편 2편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아껴 읽는 중이다. 이 즐거움을 오랫동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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