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기거나 배울 뿐

오사카 마라톤을 앞두고...

by 비둘기


勝兵(승병), 先勝而後求戰(선승이후구전).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우려하며

敗兵(패병), 先戰而後求勝(선전이후구승)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자고 달려든 다음에 승리를 구하려 한다.

<손자 병법>



이겨놓고 싸우는 법은 많다. 손이 움직일 정도로 드럼을 연습한 뒤, 무대에 올라가는 것. 시험 범위를 7번 이상 반복해 공부한 뒤,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 준비된 훈련 스케줄을 완벽히 소화하고, 케이지 위에 올라가는 것.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면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이미 이겼는지, 이미 졌는지. 그 느낌에 따라 기도가 바뀐다.

이미 이겼다고 생각한 날은

'하느님 배탈만 안 나게 도와주십쇼!'

이미 졌다는 생각이 드는 날은

'하느님 제발 이번만 도와주세요! 딱 한 번만요!'



11월 jtbc 마라톤에선 그 느낌이 오지 않았다. 전날까지 내가 잘할지 못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불확실성이다. 전날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뛰는 동안에도 내가 끝까지 뛸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었다. 목표했던 기록 3시간 30분보다 좋은 기록. 3시간 25분으로 완주했다. 더운 여름 열심히 달린 보람을 느꼈다. 이제 풀코스 마라톤에서도 이겨놓고 싸우는 법을 터득했다 믿었다. 내년 봄엔 3시간 20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3시간 10분도 욕심냈다.



1월부터 열심히 달렸다. 봄을 생각하며 평소보다 많은 거리를 달렸다. 견디는 만큼 강해지고, 빨라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몸은 아파졌다. 처음엔 사소한 발목 통증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달렸다. 하지만 다음 날 좀 더 불편해졌다. 한의원을 갔다. 한의사님께서 별 일 아니라고 했다. 안도하고 다시 달렸다. 통증이 심해졌다. 더 큰 한의원을 가고, 더 많은 치료를 받았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큰 마음 먹고 푹 쉬었다. 2주 정도 달리지 않았다. 발목은 나아졌지만, 또 아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오사카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을 내는 건 포기해야 했다. 국내 마라톤이었다면 그냥 취소하고 달리지 않았겠지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좋은 기회를 놓치긴 싫었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 오사카를 달린다. 질 것을 알지만, 싸운다.

지더라도 너무 많이 괴롭진 않았으면 좋겠다.

기도한다.

'하느님 제발 이번만 도와주세요! 딱 한 번만요!'

마지막으로 정신 승리한다.

"지는 것은 없다. 이기거나 배울 뿐"


이제 비행기를 타러 간다.

이렇게 걱정하는 순간조차 기대되고 설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악과 싸우던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