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

D-1

by 비둘기

마라톤 대회 전날엔 꼭 해야할 일이 있다. 바로 배번표를 옷에 붙이는 일이다. 배번표는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는 티켓이자 나를 보여주는 신분증이다. 배번표는 옷핀으로 하나하나 끼워야한다. 비뚤어지지 않게 붙이려고 애를 써도 영 마음에 안 든다. 한쪽을 다시 하면 다른 쪽이 삐뚤고, 다른 쪽을 다시 끼우고나면 종이가 평평하지 않게 구부려져있다. 이리저리 고쳐본다. 완벽하진 않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괜찮을 정도로 붙으면 만족한다.


그 다음은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한 자리에 모아 확인 한다. 마라톤 시합 날 내가 입을 옷, 신발, 시계, 배번표, 에너지젤, 헤어밴드 등을 모두 꺼내서 펼쳐놓는다. 빠뜨린 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하나하나 점검한다. 계획하고 준비하는 게 부족한 나도, 이때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린다.


마지막 할 일이 남았다. 사진을 남겨야 한다.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사진을 레디 샷이라 부른다. 이

레디 샷을 여기저기 공유한다. 내일 내가 달릴 것이라는 걸 많은 이들에게 알릴수록 좋다. 많은 이들의 응원은 달릴 때 힘이 된다. SNS에 들어가면 다른 이들의 레디 샷도 볼 수 있다. 보면서 내가 혹시 빠뜨린 게 없나 살펴본다. 나와 같은 날, 같은 곳을 달릴 다른 러너들을 마음 속으로 응원한다.


센서를 밟기만 해도 기록을 측정하는 첨단 과학 시대에도 마라톤은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 옷핀으로 배번표를 붙이고, 펜으로 하나하나 체크하며 준비물을 확인하며 내일 잘 뛰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른 이들을 응원라고, 나도 좀 응원해달라 부탁한다. 이렇게 내일을 기대하는 순간이 나에겐 달리는 순간만큼 즐겁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