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9시가 다가왔다. 광고가 끝나고, TV 화면에 큰 시계가 나타났다.
삐(8시 59분 57초)
삐(8시 59분 58초)
삐(8시 59분 59초)
삐!
시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오후 9시가 되었음을 알렸다. 동시에 뉴스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빰빠빰~ 빠라빠밤~ 빠라빠라빠라밤~ 빠밤! 웅장한 노래가 끝나자 앵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분명한 발음으로 인사를 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월 6일 수요일 밤 9시. 뉴스 투나잇 앵커 김희석입니다. 요즘 생필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아파트 땅값 등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면서 인플레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화면 한쪽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더벅머리에 멀끔한 티셔츠를 입은 남자였다. 이제 막 첫 소식을 전하던 앵커는 수상한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열심히 지하철 요금 인상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마이크에 낯선 남자는 머리를 들이밀었다. 앵커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카메라도 그의 눈빛처럼 흔들렸다. 갑작스레 난입한 남자는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제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제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가리봉동에 사는…
그는 말을 마치지 못한 체, 다른 직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끌려 나가면서도 뭐라고 외쳤지만,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베테랑 김 앵커는 그가 나가는 모습을 흘긋 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뉴스 도중에 웬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행패를 부렸습니다. 바로 다음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푸하하하하!”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폭소가 터졌다. 웃음에 진동한 침 한방울이 내 기도에 걸렸다. 웃다가 콜록대다가 난리 부르스를 추자 같은 소파에서 TV를 보던 아내가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웃냐고 묻지도 않는 그녀에게 나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뉴스 방송사고 영상인데, 진짜 레전드야! 아직도 웃기네. 크크크.”
“뭔데 그래?”
“9시 뉴스 중에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난입했어. 그런데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한 거?”
“오! 어떻게 알았어?”
“그게 언제적 영상인데. 그거 모르는 사람 아마 없을걸? <응답하라1988>에도 나왔고, 얼마 전 SNL에서도 패러디했어.”
“아무튼 진짜 웃기다. 이 아저씨 정말 왜 그랬을까?”
“조현병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지금은 뭐하고 계실까?”
“궁금하면 한 번 찾아가보던지.”
“어디 계신지 알면 바로 찾아갈텐데. 그분 찾아서 인터뷰하면 대박이겠다.”
“출근 준비나 하시지요.”
“이미 다 씻었으니까 옷만 입으면 돼. 아직 누워있어도 괜찮아.”
시계를 보았다. 시침은 9를 분침은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9시 12분. 10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방금 봤던 영상의 댓글을 살펴보았다. 아저씨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저 아저씨 지금 뭐하고 계실까?
-잘 지내고 계시겠지
-조현병이라는 소문이 있음
-이 영상 보면서 손주들한테 자랑하고 있을 듯
-이 사건은 실화입니다. 저분은 국가의 비밀 프로젝트의 피해자입니다. 국가는 우리 뇌에 칩을 심었습니다. 그 칩에 전기 신호를 보내면 뇌파의 작용으로 인해 우리를 감시하고 조종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나쁜 국가로부터 피해자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진실을 널리 퍼뜨려주세요.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끈 뒤, 소파에 스마트폰을 던졌다. 스마트폰은 소파에 한 번 퉁 튀기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큰맘 먹고 이틀 전에 샀던 아이폰 프로 16의 생애 최초 추락이었다.
“안돼! 내 아이폰!”
다행히 액정은 멀쩡했다. 물론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결국 바닥에 떨어질 운명이란 걸. 그래도 산 지 이틀 만에 그럴 줄은 몰랐다. 아내는 내 등을 세 개 치며 말했다.
“그러게 그걸 왜 던지고 그래. 바로 앞에 두면 될 것을”
나는 옷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늘 일당 다 날렸네. 얼른 돈 벌러 가야겠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신세가 처량해 대충 아무거나 꺼내 입었다. 수학 강사가 무슨 옷이 중요하겠는가?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생각했다. 유명 인강 업계의 일타강사들은 헤어 메이크업도 받고, 코디도 있다고 하던데. 가르치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도나. 그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지. 그들은 실력에 비해 너무 많은 돈과 주목을 받는다. 고작 고등학생들이 푸는 코 묻은 문제를 풀면서 지식인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린다. 그들 중엔 수학 전공도 아닌 이들도 많다. 몇몇은 아마 직접 수능을 보면 100점을 못 맞을 것이다. 그들은 부족한 실력을 깔끔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가린다. 그들이 나보다 화려한 삶을 사는 게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건 불공평하다. 마지막 단추를 잠그고 옷방에서 나왔다. 아내는 휴대폰을 들고 달려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것 좀 봐. 내가 유튜브 키자마자 우리가 이야기했던 영상이 떴어. 난 평소에 방송 사고 영상은 도청 장치 아저씨 영상!”
“어? 진짜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신기하다.”
“아이폰 이 자식! 우리 얘기 다 듣고 있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나 이제 갔다 올게! 오늘은 6시면 끝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