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도시
러시아 지역전문가로 머무는 동안 많은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대부분 혼자 떠났지만, 가끔은 제 다음 여행지를 듣고 함께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곤 했습니다. 볼고그라드를 방문할 때는 어학원에서 만난 멕시코계 미국인 친구가 동행했습니다.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던 그는 자비로 어학연수를 온 20대 후반의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Booking.com을 통해 여러 명이 함께 머무는 호스텔을 예약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볼고그라드에서 묵었던 숙소는 반지하에 곰팡내가 진동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결국 예약비를 포기하고 햄프턴 인 호텔로 옮겨야 했죠. 그날의 여정은 꽤 험난했습니다.
볼고그라드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잔혹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알려진 도시입니다. 당시 저는 어학원을 마친 뒤 숙소에서 러시아 관련 영화를 찾아보곤 했는데, 특히 두 편의 영화 — 미국 영화 Enemy at the Gates와 러시아 영화 Stalingrad — 가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도시 곳곳에는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파노라마 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쟁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한 미국인 친구는 “조국의 어머니상”을 꼭 보고 싶어 제 여행에 동행했다고 말했습니다. 1967년, 대조국전쟁을 기념해 세워진 이 거대한 조각상은 손에 든 칼을 포함하면 높이가 87미터가 넘습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보다 약간 낮지만, 그 위용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조국의 어머니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압도적인 규모에 숨이 멎을 듯했습니다. 뉴욕에서 자유의 여신상은 유람선 위에서 멀리 바라봤기에 실감하기 어려웠지만, 이곳에서는 조각상 바로 아래까지 다가갈 수 있어 그 장엄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