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바깥의 러시아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러시아인들이 이곳에서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동양 출신 이방인의 눈에 비친 칼리닌그라드는, 군사도시의 경계심과 휴양지의 따뜻한 여유가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칼리닌그라드는 모스크바에서 1,200km 떨어진 도시다. 원래는 동프로이센으로 불린 독일 영토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출생지로 유명하며, 2차 대전 후 소련 영토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레닌의 혁명에 적극 가담한 정치가 칼리닌의 이름에서 도시의 이름을 따왔다.
러시아 땅이지만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해 여행을 결심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보고 싶어 칼리닌그라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이곳이 여러 나라 사이에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라는 사실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죽 점퍼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는데, 처음에는 택시 호객꾼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치려던 순간 목덜미가 잡혔다. 그는 다름 아닌 사복 경찰이었다. 이끌려간 공항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이나 취조를 당했다. “왜 군사도시에 놀러 왔느냐?”, “한국에서 군 복무는 했느냐?”, “왜 국제전화를 했느냐?”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구글 번역기를 사이에 두고 이어진 취조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입국과 동시에 사복 경찰에게 시달리니 당장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만의 매력을 조금씩 발견했다. 러시아 본토와는 다른 양식의 성당, 독일과 폴란드에 가까운 위치 때문인지 러시아식 아파트조차 어딘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검은 머리 동양인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던 사람들의 태도도 그만큼 이 도시가 가진 특수성 때문일 터였다.
칼리닌그라드주에 속한 스베틀로고르스크는 러시아인들에게 잘 알려진 휴양지다. 한국에서는 가을이라 불릴 시기지만, 이곳의 10월 중순은 이미 한겨울처럼 추웠다. 그러나 차가운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한결 풀렸다.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러시아인들이 이곳에서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동양 출신 이방인의 눈에 비친 칼리닌그라드는, 군사도시의 경계심과 휴양지의 따뜻한 여유가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