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일상
이번 뉴욕행 14시간 비행은 설레는 그리움 때문인지 지루할 겨를이 없다. 6년 전 큰딸 졸업식에 이은 딸의 졸업식, 가족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가족이 있으면 그곳은 집이 된다.
조금 늦게 시작한 유학길이었지만 사브작사브작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딸은 만만치 않은 외국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해맑은 웃음과 함께 주변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보석 같은 재능이다.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닌 뉴욕에서의 일상은 서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절히 몸의 소리를 들어주면서 아내와 함께 새로운 환경과 사귀어간다. 시차로 졸음이 오면 졸린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또 바람 부는 대로, 맑고 화창한 날에는 화창한대로 변하는 계절이나 밤낮이 바뀐 시차에도 몸의 리듬을 맞춰간다. 이제, 아내와 둘에서 직장을 다니는 큰딸과 졸업을 준비하는 딸, 네 명의 우주가 서로의 신체리듬과 상황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어우러질 시간이다. 함께 만들어내는 그 풍성한 조화는 크고 작은 파도를 겪으며 얻게 될 값진 선물이 되리라.
맑게 개인 날 찾아간 이스트강 반대편 허드슨강가의 High line은 일일 가이드가 된 아내의 뉴욕 최애코스이다.
독특한 구조의 Vessel에서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까지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강변의 Little Island로 길게 이어지는 도시 내 정원 프로젝트는 작은 Central Park를 연상시킨다. 하이라인은 센트럴파크와는 규모나 역사면에서 직접 견주기 어렵지만 폐철로를 재생하여 창의적으로 공원을 만들었다는 점이 쓰레기처리장 부지를 매립하여 조성한 센 파크의 DNA와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16년 짧지 않은 역사를 거치면서 전문가들의 섬세한 손길로 가꾸어진 정원은 2.33km 거리를 지나며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수백 년 도시역사와 함께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입체적 건물들 사이를 제법 높은 2층 높이에서 천천히 걷다 보면 크고 작은 풀들과 올망졸망한 꽃들, 그리고 가지무성한 나무들이 서서히 말을 걸어온다. 비록 이름을 불러주지는 못해도 잎을 흔들며 인사하는 듯하다. 그사이로 멀리 보이는 허드슨강은 이 길을 마치 숲 속 오솔길로 만든다. 하나하나 다른 모양의 건물들은 바위가 되고 건물사이 하늘은 계곡으로 때론 폭포가 되기도 한다. 도시 속 산책길은 정원을 도시의 건물과 더불어 숲으로 만들고 이로써 도시는 정원과 하나 되는 조화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이것이 다양한 인종의 공존만큼이나 끊임없이 인간과 자연, 새로움과 오래됨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뉴욕의 매력이고 뉴욕이 주는 선물이다.
거대한 공룡의 뱃속을 탐험하는 듯한 Vessel 내부를 통해 보이는 첨단 건물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뉴욕의 현주소를 알려주고 있다. 또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Little Island의 정원은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이어지는 Whitney 미술관은 별다른 기대감 없이 찾았는데, 한국계 미국화가 Christine Sun Kim의 대규모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농아였던 작가가 소리 없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인식하여 표현한 예술세계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언어적 표현이었다. 작품을 살펴보느라 미쳐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예술을 통해 다양한 조건의 인간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확장된 미지의 자신을 경험하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한 층 아래 전시장에선 뉴욕하늘을 온전히 품은 허드슨강이 벽면 가득히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자연이 전시관내 또 다른 예술작품이 되는 Whitney 미술관만의 특별한 전시다.
이렇게 소중한 뉴욕의 새로운 일상은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