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킹스턴 Kingston

11월 뉴욕의 일상

by 바 람


어스름 새벽노을과 함께 어둠이 밀려가기 시작하면 슬슬 러닝 하러 나갈 때다. 강변에 도착할 즈음이면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 하늘의 장관은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알려준다. 이렇게 달리면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고 도심을 흐르는 강물의 기운을 받아야 그나마 이 도시를 헤쳐갈 에너지가 생긴다. 벌써 뉴욕에 온 지 12년 차가 되는 큰딸의 하루일과는 그렇게 시작된다.

거대한 미대륙의 동쪽 끝에 작지만 밀집되어 있는 뉴욕 맨해튼은 양쪽으로 허드슨강과 이스트리버를 끼고 아래로는 대서양으로 연결되 세계를 향해 열려있다. 대륙을 등에 업은 물의 도시, 수용과 소통, 흐름의 탁월한 기운은 어느새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어 왔다.


42번가 브라이언파크에 있는 뉴욕공립도서관은 퇴근하는 딸들과 만나기 위해 머무르기 좋은 장소이다. 덕분에 3개월 긴 여정의 금강경 한글필사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머무름 없이 살아가는 지혜는 향심기도 수련여정과 언어만 다르지 내용은 서로 통하고 있다. 동서양 영성을 이었다는 토마스 키팅신부님의 말씀과 출국 전 ”그 모든 게 생각이야! “하신 이승구신부님의 말씀 또한 구공의 이치와 연결된 살아있는 언어였음에 가슴속 미소가 슬그머니 입가로 번진다. 조금씩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매일 이스트강을 끼고 해를 바라보며 달려도 부족한 것이 자연 속에서의 쉼이다. 서부 샌프란시스코나 버클리의 쉼터가 요세미티공원이었다면 아마도 동부 뉴욕은 캣츠킬산맥이 그 역할을 대신하리라 기대했다. 맨해튼에서 북서쪽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의 작은 도시 킹스턴을 향해 주말 나들이를 떠난다. 뉴욕생활의 화려한 표면을 살며시 접어두고 좀 더 한적한 일상 속으로 한 발자국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다.


뉴욕도심을 벗어나 북부로 갈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다. 특히 이곳 킹스턴은 뉴욕주 최초의 수도이자 1770년대 이전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곳으로 큼지막한 돌담으로 쌓은 더치식 교회등 곳곳에 네덜란드 식민 유적이 남아 있다. 중심가에는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로컬 갤러리, 작은 만남의 장소인 카페등에서 지역만이 갖는 독특한 감성을 엿본다. 제법 알려진 곳이라 외부 관광객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동네 아지트 같은 카페 겸 옷집에서는 옷을 리폼해서 업사이클링하시는 멋쟁이 재단사아저씨가 눈길을 끈다. 허드슨강으로 이어지는 근처 아소칸(Ashokan) 호수 지명에서는 ‘많은 물고기가 있는 곳‘이란 인디언의 언어를 읽는다. 미연방국가 안에 574개의 인디언 연방부족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들은 2개의 시민권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아직도 인디언원주민들은 그들 땅에 대한 소유권주장을 주정부 상대로 법적 소송 중이란다.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길고 긴 줄다리기 역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한쪽이 어느 한쪽을 군사력으로 굴복시켰다 하여도 다른 한 편의 문화적 정체성까지는 어쩌지 못하니 끝없이 돌고 도는 갈등의 수레바퀴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 다른 입장을 인정하고 타협하며 수용하며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실 정치, 법률, 행정이 본질적으로 그것을 조율하기 위해 있는 것일 텐데, 각자 맡은 바 직분을 다하길 깊어가는 가을에 상념 또한 깊어진다.




어김없이 식사시간은 찾아오니 먹거리를 챙긴다. 미리 예약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역시 다양한 가족들로 붐비고 있다. 딸들은 어느덧 이 땅에서 사는 요령이 능숙해 보인다.


소박한 단골 카페에서 멋 부리며 차려입고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머리가 하얘진 노부부가 낙엽을 밟으며 산책하는 모습, 로컬 갤러리에서 작품 설명하는 주인이나 붐비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밀려드는 주문에 무심한 듯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여주인 모두 각자 선택한 곳에서 삶의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름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애정이던 책임이던 정성을 다하는 곳은 어디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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