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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Feb 19. 2020

월든

고마운 스승들




건축학개론의 필독서를 손에 넣은 지 서른다섯 해가 지났다. 소로우의 오래된 글은 미국 문학의 자존심이라는 평과 함께 건축을 공부하는 자로서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좋은 소재였다. 교수 자신도 그의 스승을 통해 던져진 질문을 제자들에게 물려준 것인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의도는 반쯤 성공한 것 같다. 평생 숙제처럼 안고 살게 한 월든은 당시 짧은 영어실력으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앞서 익숙하지 않은 단어로 인해 원서의 표면이나 언저리를 더듬기 조차 버거웠다.


표지까지 뜯겨진 낡은 원서



세월이 지나 어느 날 법정스님이 월든 호수를 거닐며 데이빗 소로우를 이야기하는 TV 프로도  기획되고 국문으로 정성되이 주석을 달아둔 번역본이 나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영문의 조그만 책자가 두툼한 국문으로 번역되어 제법 길게 풀어쓴 글을 읽으며 낯선 단어와 문장들과 씨름했던 그 시절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다시 번역본을 집어 든 것도 어느새 그로부터 이십 년. 그전에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인지 매 글귀를 읽을 때마다 낯설게 느껴짐에 얼굴이 붉어진다. 가벼이 넘겼던 문장들이 새록새록 의미 있게 다가온다. 자연과 동물, 인간의 조건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이 관찰하고 이해한 방식으로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간 생존의 조건인 의식주, 기능과 장식,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본질적 가치를 월든 오두막을 통해 직접 실현시켜 보이는 글을 읽는 내내 법정스님의 오두막과 그분이 전해주셨던 많은 이야기들이 겹쳐졌다. 자신의 신념을 삶으로 살아낸 자들이 갖고 있는 글의 힘이 느껴진다. 얻고자 하는 재화의 가치가 과연 그럴만한 삶의 지불가치가 있는지 묻고 답하게 한다. 현대문명 자체에 대한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깊이 있는 사색과 담백한 문체는 그가 머물렀던  마을과 적절히 떨어진 숲 속의 오두막 굴뚝에서 날듯한 연기처럼 평화롭게 솔솔 피어난다. 숲 속의 새를 이야기할 땐 그 소리가 들릴듯하고 조용한 호수에 비친 하늘을 얘기할 땐 나도 손을 뻗쳐 잡을듯하다. 참 섬세한 관찰과 마음씀이 느껴진다. 동서양 고전을 언급하는 문장에선 깊고 폭넓은 지성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벽을 무너뜨렸다. 진실을 항한 정신, 깨어있는 자만이 산자라는 일성은 아직 남아있는 침대의 온기에 매달리고 있는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산업혁명기 백칠십 년 전 그의 용기 있는 실험과 정제된 사색은 그 시대에 비해 이미 물질적으로 비할 수없이 더 풍요로운 인공지능 시대인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전이  빛나는 순간이다.


가정을 갖지 않았던 저자의 실험적 삶이나 출가승과는 선택한 삶의 조건이 다르나 그들 덕분에 한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한 꺼풀 걷어낸 본질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참 고마운 스승들이다.

한두 마디로 위대한 정신의 산물을 논한다는 자체가 해를 두고 반딧불을 묘사하는 듯하여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그가 남긴 유산을 혼자만 누리기 아까운 마음에 글을 남긴다.



1999년10월 1판19쇄본 새로운 밀레니엄 시기에 구한 책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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