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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Apr 24. 2023

섬진강 봄 라이딩

두꺼비 오 형제

매화, 벚꽃, 배꽃, 섬진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생생한 삶의 서정시인 김용택.

합알친구들이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손꼽은 장거리 라이딩코스는 단연 섬진강이었다.

섬진강의 유래는 옛날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말 왜구가 침범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울음으로 진로를 바꾼 역사가 있어 섬강이라 불렀다가 일제강점기에 섬진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꺼비들도 생명의 강물을 피로 물들게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최대한 여유로운 일정을 계획하며 윤교수가 몇 주 앞서 사전답사를 했다. 곡성과 구례를 가로지르는 코스, 기대된다.

아침에 각지에서 친구들이 모여 출발하는 용인의 아파트주차장 앞에 결혼을 앞둔 이짱의 큰아들이 나와 배웅을 한다. 훤칠한 인물에 예의 바른 인사를 받고 나니 기분이 흐뭇하고 즐겁다. 벗들과 더불어 있으면 그저 그 시절 청년이 되는데, 막상 친구의 장성한 아들을 맞대하니 흘러간 세월이 여전히 낯설다.

이번 여행은 좀 불편하더라도 다섯 명이 한대의 차로 가보자. 이렇게 합의를 하고 계획을 수립했다.

2 열좌석을 접지 않고 5대의 자전거를 실으려면 미니벨로밖에 선택지가 없다.

브럼톤전도사인 윤교수가 팔을 걷어붙이고 선뜻 아내와 아들의 브럼톤을 대여해 주기로 했다. 아끼는 아내의 자전거를 내어주는 부부의 그 넉넉한 마음이 참 고맙다. 덕분에 명차 시승의 기회를 얻는다.


여행하면 역시 놓칠 수 없는 게 먹거리의 즐거움이다.

사전답사를 완료한 윤교수가 이끌고 간 맛집은 곡성기차마을 전통시장 국밥집이다. 토렴식 국밥이 일미란다.

가까스로 도착하였는데, 주인장께선 2시엔 문을 닫는다고 극구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물리치신다. 참, 1시 50분이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옆에 있는 시장국밥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손님을 막 치르셨는지 검은 캡모자에 아래위 검정으로 깔맞춤 하신 여주인장께서 점심 드시던 숟가락을 내려놓으시며 묵묵히 우리를 맞이하신다. 피순대 먹을 줄 아시냐고 무뚝뚝하게 묻는다. 아마도 옆집 주인과 가벼운 실랑이한 것을 듣지 않으셨을까? 엉겁결에 대답을 하였는데, 이어 나온 투박한 용기에 담긴 푸짐한 국밥을 보고선 깜짝 놀랐다. 자세히 주방을 살펴보니 직접 돼지머리를 삶고 손질하고 계셨다. 깔끔하게 손질된 모둠순댓국의 다양한 부위가  잡냄새 하나 없이 정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별 기대 없이 주문한 음식이 이런 횡재라니 왠지 이번 여행에 먹을 복이 많겠구나 내심 기대되었다. 전라도음식 고수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자전거에 진심인 캡틴은 이번 라이딩은 우리들의 짧은 라이딩 역사에서 아마도 전과 후로 나눠질 만큼 중요한 라이딩팁을 알려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일명 둔근페달링. 둔근과 골반에 의식을 두고 페달링을 하다 보면 허벅지와 종아리, 발목은 저절로 따라가면서 큰 힘들이지 않고 그냥 안장에 앉으면 가게 되어있다고 열변이다. 해외논문과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한 것이란다.  

한적한 섬진강변의 자전거길은 수도권에서 맛볼 수 없는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차선과 섞인 자전거길조차 우리만의 독차지길이다. 지리산자락에 굽이굽이 펼쳐진 섬진강변에서 자연 그대로의 각양의 식물들이 어우어져 자라는 모습은 넉넉한 엄마품을 그립게 만든다.


이제 달렸으니 보상을 해줘야지.

이번에도 사전답사한 현지 맛집, 용식이네 삼겹살.

처음 맛보는 사잇고기. 앞다리살이라는데, 보기와는 달리 비계가 제법 쫄깃하고 고소하다. 이어서 먹은 삼겹살맛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 후식으로 먹는 라면, 누룽지, 냉면 모두 주인장의 진심이 느껴진다. 역시 남도는 남도다.

사잇고기
정말 오랫만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생일, 한턱 낼 기회에 감사~


이제 섬진강라이딩 이틀째,

첫날 라이딩에 초기화된 엉덩이가 네 쪽이 되었다. 미세피팅을 하고 출발한다.

아침을 든든히 먹자고 어제 못 먹은 순대국밥집을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장날이라고 문을 열지 않았다. 정말 먹는 것도 인연이 닿아야 하는구나. 그 인연 뒤로 남겨두고 옆에 있는 추어탕집에 들어섰다.

이미 중국산이 식탁을 점령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꾸라지는 더더욱 국산을 찾기 어렵지만 재래시장 추어탕이니 별미가 있으리라 작은 기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품새 있으신 여주인장이 슬그머니 미꾸라지 구입명세서를 식탁에 올려놓으신다. 바깥사장님은 곡성땅에서 4만 평 유기농쌀농사를 하시고 자신은 이곳 이장이라고 은근 자랑을 하신다. 모든 밑반찬 양념까지 손수 만든 것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그러면서 싱싱한 두릅까지 서비스로 주신다. 남도의 인심은 참 넉넉하다.

문을 나서는데 옛날팥죽이 시선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배부르면 라이딩하는데 힘들다고 사양하는 친구들 슬쩍 윤교수와 둘이서 들어가 맛보기로 한 그릇만 시켰다. 팥의 그윽한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새알의 크기와 점도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이건 정말 맛봐야 한다. 배부르다던 친구들도 다가와 수저를 놓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신 주인할머니는 마치 고향 찾은 아들 친구를 바라보듯 모자라냐며 새알 한 그릇을 더 내주신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듯하다. 고마우니 두 그릇값 계산해 드리려는데, 사양하신다. 잊혀간 한국의 인심이 새롭다.


이번 라이딩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를 한옥건축물로 삼았다.

한옥카페로 알려진 두리헌과 한옥으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운조루이다.

왕복 5-60킬로, 가벼운 당일코스이다.

두리헌은 제법 알려진 한옥카페인데 지난 2020년 홍수로 지붕밑까지 물에 잠겼다가 1년여 보수공사 끝에 재개장하셨다고 한다. 17년간 손때 묻은 한옥을 되살리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구석구석 작게나마 수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별채 갤러리에서는 2개월마다 새로운 전시를 하시는데, 벽에 걸린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번 전시에서 기증받으셨다는 남극세종기지에서 찍은 작가의 사진작품이란다. 깊은 고독 속에서 건져낸 대자연의 장관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구미구미 건축공간의 변화와 소품들이 재미있다.

그냥 펼쳐진 자연과 한옥의 창틀을 통해 보이는 자연은 또 다른 멋이 있다.


운조루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한창이었던 꽃들의 잔치가 끝나고 순록의 싱그러움이 대지를 물들어가는 순간이다. 4월 황사바람도 빛나는 생명의 빛을 가릴 순 없었다.

멈춰 서서 사진에 담고 싶은 장면이 한두 곳이 아니다.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한 호흡 한 호흡 숨에 담는다.


한국의 3대 명당 중 하나가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 오미마을이란다.

지형도를 보지 않더라도 막상 이곳에 다다르면 배산임수가 무슨 말인지 그대로 알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아이를 온화하게 뒤에서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의 지리산자락과 젖줄기같이 넉넉한 섬진강을 저 멀리 앞에 두고 있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은 인성이 부드럽고 인심이 넉넉할 것 같다.

운조루는 1770년대 곡성군수가 안동에서 살던 집의 모양을 재현하며 지은 곳이라는데, 250년이 지난 지금은 내부수리가 한창이다. 모든 보수재료에 번호를 매겨가며 최대한 구옥의 재료를 살리고 보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진행되고 있다. 입구에는 운조루의 상징으로 알려진 쌀뒤주가 자리 잡고 있다. 춘궁기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은 쌀뒤주란다. 볏짚모자를 멋지게 쓰고 운조루를 관리하시는 안주인은 풀로 물들어진 손을 보여주시며 한옥을 관리하는 어려움을 얘기하신다. 하지만 얘기하는 내내 상기된 표정과 억양에서 안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감출 수 없어 보였다.

운조루안주인의 추천으로 찾아간 들녘밥상집 역시 빈주차장을 보며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주인장이 맞이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젊은 여주인이 고기 없는 정식인데 괜찮겠냐며 여러 차례 여쭤보신다. 라이딩복장을 한 우리가 많이 허기져 보였나 보다. 한 상 차려진 밥상에 나물반찬과 된장찌개향이 그윽하다. 늘 먹던 시금치나물이 아닌듯하여 물어보니 여주인장은 기회다 싶어 각 나물을 설명하시고 조리법을 알려주신다. 직접 재배한 나물재료를 사용해 친정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조리법으로 만든 집밥 그대로의 맛을 살려냈다고 하는데, 생기 넘치며 빛나는 눈빛에서 자긍심이 가득 차있다.

평화로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과 자부심을 곳곳에서 느끼니 우리 또한 이 땅의 정기를 온전히 받는 느낌이다.



구휼미를 언제나 가져갈 수 있게 문앞에 마련한 쌀뒤주 -옛 선조의 노블리스오블리제 정신
250년 고택의 수리현장을 꼼꼼이 살핀 이짱의 사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보이지 않게 수고한 염교주가 새삼 우리 모임의 섬진강 같다는 생각을 했다.

드러나지 않으며 잔잔하게 서로를 생동하게 만드는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어 즐겁다.

친구들 사랑합니다.


이 모임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가족의 사랑도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겪은 좋은 체험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넉넉히 전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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