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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Aug 23. 2018

죽음에 이르는 병

인생의 밤, 어둠이 찾아올 때


아끼던 직원이 갑작스러운 백혈병 진단 소식을 내게 전했다.

가끔 어지러워 대수롭지 않게 동네병원을 찾아갔다가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가서 얻은 검사 결과였다.

한참의 침묵 가운데 주마등처럼 십여 년 전 아이의 항암기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이 친구도 그 긴 터널을 힘들게 지나가야겠구나. 먼저 경험한 자로서 어떤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조심스럽고도 아련한 마음이 든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

내게 왜?

그리고 내가 뭐 그렇게 잘못한 것이 있나?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사건 앞에 사람은 그저 자기 나약함에 무릎을 꿇고, 짓누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견뎌내야만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기 비난의 소리 없는 질책이 송곳으로 가슴을 후벼 파듯 긁어대고 옥죄여왔다. 벌어지지도 않은 부정적 상황에 대한 상상이 쓰나미처럼 내의식을 삼켜버렸던 시간들,

그렇게 질식할 듯 숨 막히게 온몸과 영혼이 독거미의 거미줄에 휩싸여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가련한 벌레 신세 같았던 때,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영혼의 속삭임과 그와 함께 찾아온 평화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어둠과 평화가 만드는 침묵의 하모니.

별을 만나기 위해선 어둠은 깊어져야 했나 보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마치 환상처럼 여겨졌던 희망의 울림을 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빛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픈 아이가 보이고, 병을 치료하고 극복하는데 집중할 힘이 생긴 거다.

십여 년이 지나 정기적인 진료에서도 자유로워진 지금, 아이는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평범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 체험은 이후 파도처럼 밀려드는 크고 작은 사업상의 위기나 사람과의 관계로 생긴 위기 때마다 어둠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달리 할 수 있게 하는 여백, 쉼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매 순간 사건에 몰입되어 압사당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상황을 다룰 기회로 받아들이고, 서툴지만 새롭게 삶의 기술을 터득해나가는 인내와 지혜를 조금씩 쌓아갈 수 있는 틈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신비로울 뿐이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잘 모르는 나에 대한 자각이 점차 자라나게 된 것이다.


낮과 밤이 있듯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

사계절이 있듯 얼어붙는 인생의 겨울도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

내 안의 생명을 믿고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을 통해 성숙이란 열매를 얻는다는 것 말이다.





그에게

오직 살아있는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살아있다는 자각의 힘으로

부정적인 상상력을 떨쳐내고

오늘의 삶에 충실할 것을 기원해 본다.

살아있는 순간까지 삶은 살아내야 한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산자여,

비록 어둠의 칼날이

네 목젖을 자를 듯 위협해도

깨어있는 삶을 응원한다.

어둠은 네 존재를 삼켜버리거나

칼날이 되어 너를 상처 줄 수없다

그러나

어둠은

네 영혼의 뿌리를 만나게 해줄 것이다  

자각하는 네 영혼의 뿌리는

하나 되는

불멸의 생명과 연결되어있다.


힘내라.


살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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