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 람 Sep 15. 2018

카인과 아벨

추석명절을 앞두고


아담 이후 성경은 첫 번째 사건으로 형제의 살인을 다룬다.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제물을 문제 삼아 뜬금없이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이 전개된다.  혹자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충돌로 설명한다. 과거의 사건을 지식으로 남기기에 좋은 해석이다.  제물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내세워 거침없이 형제를 죽이는 카인의 모습에서 세상의 모든 전쟁 논리가 연상된다.

내생존과 내이익이 직결되는 경계선에 다다르면 살인까지도 정당화되는 논리가 작동한다. 살인의 행위가 극단적이게 위협적이고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만 이는 도덕적 의식을 넘어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의식 아닌가 여겨진다.


예수는 미워하는 마음을 살인으로 봤다. 정확한 지적이다.

배신과 분노 앞에서 보복과 용서의 갈림길.

보통의 인류는 전자를 택한다.


카인이 바친 제물이 차별받은 데서 온 상처는 분노로 변하였고 그 분노의 화살은 상대적 약자로 향하였다.

죽여버려!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려! 누가 정의를 만들었나?  내 존재를 무시해? 감히 나를 넘봐? 내가 다 차지할 거야! 넌 나의 발밑에서 관용과 자비의 손길을 찬양해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함께 자라온 형제에게서 이런 태도를 발견하면 상호 타협하고 존중하는 연대감은 사라지고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일방적인 힘의 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관계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상처받고 소외된 자신이 새롭게 탄생한다.

인류는 이런 자기중심적 태도가 공동체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기중심적 폭력성을 잠재우려 부단히 법과 도덕률을 정해 중재하고 사랑과 포용, 자비 등 좀 더 크고 포괄적인 종교적 가치로 순화시키기도 한다.

부모에 의해 이루어진 형과 아우, 아들과 딸이라는 구성원, 이들에게 허용된 분배의 기준, 배려의 가치, 이것이 생활 속의 정의로 학습되고 습득되어 자연스럽게 사회적 동의로 이어져 그 시대를 만들어간다. 가정 내의 가치가 교정되어가는 과정을 사회화라고도 하지만 상처받은 카인의 후예가 만들어낸 가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성숙하게 바뀌기엔 참으로 오랜 시간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강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약자에게 교묘한 형태의 분노로 표현하고 상대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타인을 무시하는 소심한 카인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있다.


카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을 구분하는

정의는 무엇일까?


개인적 생존 본성과 사회적 생존 본성과의 적절한 균형과 타협점을 찾고 있는 연약한 존재가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나를 보고 있다.


과연 용서와 화해는 가능한 일일까?


추석명절을 앞두고 해묵은 감정 덕에 창세기 카인까지 들먹이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죽음에 이르는 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