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힘 빼기 3
운 좋게 성인이 될 무렵부터 제법 많은 나라를 돌아다닐 기회가 있어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과 문화, 자연의 경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정보가 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큰누님방에서 두꺼운 커튼사이 쪼그리고 앉아 탐독했던 두툼한 김참삼의 세계여행기 전집, 그 소년의 꿈과 호기심이 낯선 세계를 향해 겁 없이 다가가게 하였다.
요즘 세계여행 다니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내가 만나고 가본 곳은 그저 아이들 소풍길 정도 같다. 또한 넘쳐나는 책이나 유튜브, Discovery, BBC다큐등으로 눈호강을 하면서 그 많은 경험을 대신한다 해도 아직도 세상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오지가 수두룩하다. 히말라야는 여전히 버켓리스트에 남아 있고 그린란드 오로라도 마찬가지이다.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해 보는 것도 여전히 가슴 설레게 하는 꿈이다. 장거리 비행기 타기 어려울 때 간다고 미뤄온 한국의 명산, 계곡, 둘레길등 가도 가도 끝이 없어 길 위에서 죽는다 해도 다 가보지 못할 것 같다. 가보지 못한 세상은 여전히 신비고 미루어 짐작하는 아쉬운 여지로 남겨둘 뿐이다.
생은 짧고 배울 것은 너무 많다.
지구촌과 은하계를 넘나드는 몸밖의 세계도 무한한데, 소우주라 일컫는 몸과 마음의 세계는 또 어떠한가? 많은 영혼의 순례객들 역시 그 신비의 여정을 마치 GPS표식처럼 남겨두었다. 보이지 않는 오감을 넘어선 여행길이니 참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길을 잃지 말라고 남겨둔 지도를 따라 더듬어 가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유혹한다.
몸은 운동선수나 생물학자가 전문가이고 마음은 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 혹은 뇌과학자가 전문이리라. 영혼의 분야는 종교인이거나 영성가들의 몫인데, 이놈의 호기심은 멋모르고 후자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은 세계 오지를 향해 떠나는 길과는 반대이다. 따로 준비해야 할 배낭도 물도, 침낭도 필요 없다. 비우고 버려야만 좀 더 멀리, 깊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눈을 뜨고 가는 곳이 아니라 눈을 감거나 실눈을 뜨고 가야 한다. 산소마스크나 고산병을 위한 마그네슘도 필요 없다. 하지만 세파 같은 영혼의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여행의 책임이나 경험의 주인공은 오롯이 나 자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괴물과 요정, 신들과 버금가는 내 안의 기억들과 맞닥뜨릴 용기가 필요하다. 내 안에 감춰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용이 되고 한눈 가진 거인이 되기도 하고, 키르케의 유혹 속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기도 하고 어느 사이 혼을 빼고 사로잡는 사이렌의 노랫소리 같기 때문이다. 호모의 서사시는 영웅의 이야기를 빗댄 내 안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자, 이제 출발이다.
침묵여행을 떠나기 앞서 간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간다고 생각하고 몸을 풀어주는 게 좋다.
한 20-30분 정도 다녀올 것이지만 편안한 산책을 위해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정해둔 시간 내에 방해받지 않을 만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앉는다. 가능하면 등을 바로 세우고 고개를 살짝 숙인 듯 턱을 가볍게 당기는 자세가 안정된 자세로 20-30분을 보내기 적절하다. 반가부좌나 가부좌 자세는 관절에 무리가 있을 수 있으니 자기 몸에 맞는 자세를 취하는 게 좋다. 의자에 앉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깨는 편안하게 내리며 힘을 빼고 팔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늘어트린다라는 표현도 나쁘지 않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이지만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가 되도록 한다. 이자세에서는 깊은 호흡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호흡은 살짝 마신 후 길게 뱉는다는 느낌으로 뱉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호흡은 따라온다. 호흡이 깊어지면 심박도 낮아지고 쉽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여행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차분한 자세가 잡혔다면 가볍게 긴 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시 모아 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여행은 힘이 들어가면 그때부터 파도타기가 시작된다. 힘이 들어갔다고 느껴지는 순간 마음을 다시 가볍게 풀어준다. 가볍게 대해야 빠지지 않고 파도를 타고 넘어갈 수 있다.
여행의 목적지는 거창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이다. 사실 기대하는 궁극의 상태가 무언지 잘 모른다. 누군 신이라고 하고 누군 고통 없는 세계, 누군 존재의 근원을 기대한다. 같은 것일 수도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여행 그 자체가 다다를 목적지이기도 하다. 그 목적지를 한두 번 아니 단기간에 다다르려고 한다는 자체가 운동화 신고 단번에 히말라야에 오르겠다는 욕심과 같다. 힘이 들어간 것이다. 침묵여행이 밥 먹고 잠자듯 일상의 한 부분이 되면서 어느 순간 그곳에 가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가볍게 떠나는 것이다. 사실 매 순간 짧은 침묵의 여행 속에 이미 그 목적지를 체험하게 되지만 초보 여행자로서는 그 신비를 알아차리긴 힘들다. 그러려니 하고 느긋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 거다. 가랑비에 도포자락 젖듯 침묵의 맛이 배어들어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면의 침묵여행으로 출발한다.
내면의 여행은 익숙했던 감각기관의 왕성한 활동을 달래는 것부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 잘 훈련된 감각기관은 시도 때도 없이 알람을 울린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질수록 소소한 자극이 일깨운다. 창밖의 먼 자동차소리, 윗집 발소리, 하물며 새소리까지 평소에 잘 들리지 않는 소리들마저 아우성이다. 갑자기 코가 간지럽기도 하고 발가락이 저리기도 하다. 목이 뻐근하기도 하고 반가부좌 한 발목이 종아리를 짓눌러 아프기까지 하다. 이들을 만만히 보면 여행기간 내내 이 감각들과 싸우다 끝이 나고 만다. 하지만 끝나면 끝나는 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면 되고 원래 그런 거다 생각하며 당황하지 말고 잘 달래줘야 한다.
짧지만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체험을 잠시라도 하면 이제 여행의 맛을 알기 시작하는 거다. 물론 그 순간을 알아차리기까지 상당히 오랜 수련이 필요하지만 평소 자기 성찰 훈련이 잘된 사람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침묵을 즐길 수 있다.
외부감각의 자극은 내면의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오감과 생각, 감정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에고니 거짓자아니 하면서 이들을 잠시라도 소홀히 대했다가는 반듯이 후폭풍을 겪게 되어있다. 무시하거나 억누르거나 쫓아내면 뒤끝작렬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떠오르는 모든 감각, 생각, 감정들은 모두 나라고생각하고 소중히 대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되 힘을 의식하지 않으면 놀랍게 사라진다.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면 그 감각과 생각과 감정들이 서로 반응하고 엮어져 소설을 쓰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 원래 그런 거다. 그렇게 훈련되 있는 게 호모사피엔스다. 살아남기 위해 상상하고 꿈꾸고 과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인간이라는 종족이다. 바로 그런 상태를 힘이 들어갔다고 표현하는 거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힘이 들어갔네, 그 순간 그냥 힘을 놓으면 된다. 뺀다는 표현보다 놓아버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빼는 것도 힘이다. 그냥 살며시 피시식 놓아지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침묵은 굳이 표현하자면 깊은 밤 고요함 같기에 작은 감각의 반응이나 생각, 감정들이 평소보다 훨씬 명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너무도 탁월한 아이디어나 감추었던 억울함, 분노등이 막 떠오를 수도 있다.
에고가 춤을 춘다.
그게 내 삶이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줘라. 하지만 아주 가볍게 아주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만으로 살짝 맞이한다는 마음만 갖는다면 해변의 파도처럼 거칠게 다가왔어도 결국은 거품처럼 사그라든다. 그저 철썩철썩 밀려오는 파도처럼 온갖 감각, 생각, 감정의 물결이 쉼 없이 밀려온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가벼이 대하다 보면 파도는 그저 파도일 뿐 반복되는 패턴에 리듬을 타면서 그 리듬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가벼이란 소중하되 힘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가벼이 대한다는 의미이다. 이들을 무시하면 결국 일상에서 그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체적으로 그 시기 그 순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특히 강렬하게 떠오르는데, 뜬금없이 묵은 추억의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다. 침묵 속에 드러나는 이 에고의 다양한 가면 쓴 모습을 잘 다뤄야 일상 속에서 나의 삶의 태도가 그에 합당하게 다뤄진다.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다.
이것이 내면의 침묵 속에서 귀하고 가볍게 대해지면 조금씩 나라고 여겨진 강렬한 감각과 생각, 감정들에 힘이 빠지면서 기분이 뭔지 모르게 살짝 가벼워진 듯 경쾌해진다. 그렇다고 실제로 기분이 업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은근히 좋아지는 기분이 저 밑에서부터 은은하고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것이 배부르지 않게 적당히 밥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항상 그런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면서 이것도 가벼이 대한다.
힘이 빠지면서 뭐라 할 수 없는 침묵이 드러난다. 언어의 한계이지만 그 침묵이라는 것이 신일 수도 있고 공일수도 있고 적멸 무아 삼매일 수도 있다. 평소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이다. 묘하다. 이것을 침묵여행 중에 알아차리긴 어렵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 여운으로 침묵을 감지할 뿐이다. 침묵은 말 그대로 침묵이다. 하지만 묘하게 알아지는 의식이 있어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허용하듯 맡기고 있다.
이건 의지와 무의지의 경계인 것 같다. 마치 무동력 글라이더나 갈매기가 높이 떠올라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하늘에 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나라고 여기며 소중히 대했던 것에 힘이 빠지고 사라지는 체험은 결국 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이끌어내고 힘을 빼도 사라지지 않는 침묵세계에서 여전히 있는 바로 그 묘한 나를 자각하는 체험이 이 여행의 진미이다.
가톨릭의 향심기도에서는 거룩한 단어를 사용해서 이들 생각, 감각, 감정들을 대하고, 불교에서는 알아차림, 깨어있음이라고도 한다. 같은 말이지만 좀 일상적인 생활언어로 힘 빠짐이라 적용해 보았다. 사실 내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껴지는 감각과 올라오는 감정을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떠오른 나타난 생각, 감각, 감정에 반응하는 태도만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 태도가 결국 점점이 이어져 내 삶의 흔적이 되는 거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에고의 환영을 다루는 것이 침묵여행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소중하되 가벼이 다룸으로써 드러나 경험하는 침묵이 여행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의 체험을 일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기도 하다.
무겁고 중요하게 대했던 일상사에 가벼움과 여유로움, 자유함이 생긴다. 대자연을 만나 느끼는 그 기분이 앉은자리에서 다른 결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내면의 침묵여행 맛이다.
힘이 빠지면 시야가 넓어지고 한결 여유가 생긴다. 남는 힘으로 침묵을 경험하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입장과 주변상황을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여행 중 자신에게 대했던 따뜻함과 힘 빠짐이 타인에게 사랑과 자비, 배려와 친절이라는 태도로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뭐가 뭔지 잘 몰라도 꾸준히 매일 밥 먹고 잠자듯 일상의 반복적 습관으로 자리 잡는 초보의 입문수련에서 침묵여행의 힘 빼는 포인트를 알아차린 이제, 초보여행자 딱지는 떼는 것 같다.
침묵여행 안내서
(참고로, 안내서는 안내서일뿐이다.)
1.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토마스 키팅, 1997
2. 무지의 구름, 클리프턴 월터스, 1997
3. 내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 토마스 키팅, 2006
4. 향심기도, M. 바실 페닝턴, 1982
5. 일상의 기도를 넘어, 제럴드 메이, 2015
6. 번뇌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아씬 떼자니아, 2006
7.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