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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Jul 13. 2023

일상의 훈련 1

힘 빼기 4



힘을 빼고 침묵의 깊이를 체험한 후 만나는 세상은 그 이전과 이후가 확실히 다르다. 이전 같으면 일상에서 속을 뒤집으며 반응하던 일들이 그저 잔잔한 파도가 되어 가벼운 호흡가운데 잦아든다.


힘을 뺀다는 것에는 무의식적으로 육신의 죽음과 소멸, 그리고 루저가 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무엇을 해도 열심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 자랄 때의 덕목이었던 만큼 성공적인 삶,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죽는 순간까지 힘 있는 모습으로 남아야 빛이 난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과 환경을 다스릴 수 있는 힘,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힘, 내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 그리고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힘의 상징인 신, 이런 힘에 대한 필요와 욕구는 태어나면서부터 뼛속까지 새겨져 왔다.

살면서 유용한 이 힘들을 더 키우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지만 더 이상 힘을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애쓰고 힘을 주지만 더 이상 그 힘을 쓰지도 얻지도 못하는 순간이 오면 길을 잃게 된다.


두려움과 고통의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길고 고요한 침묵 중에 더 이상 쓸 수 없는 그 힘을 놓아버리는 순간, 또 다른 힘이 내 안 깊은 곳 어딘가에서 아득히 숨어 있다가 불현듯이 혹은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 그 존재감을 알려준다.

힘을 뺀다는 것은 힘을 없앤다는 것과는 다르다.

주었던 힘을 놓으면서 다른 힘으로 탄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삶에 리듬이 생긴다.

침묵 속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단지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힘을 뺄 때, 그것이 깃털처럼 가볍게 사라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자신을 깨닫게 해 준다. 그때 또한 내 안에 깊이 숨겨둔 존재에 대한 불안감도 거품처럼 함께 사라진다.

반복되는 이러한 체험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가벼이 대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데, 이 새로운 도전은 생활에 생기 있는 리듬과 자유함을 준다.


힘 빼고 살아도 된다.

내겐 아직은 알지 못할 또 다른 힘이 있다.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삶에 자신을 맡겨라.


그것이 사라져도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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