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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운 Mar 11. 202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웃어야 할 이유도, 웃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는 이유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없는 존재의 가벼음과 맞닿아 있지 말입니다." 나는 군복무  사무실이 한가할 때면   맞선임  병장에게 이런 식으로 헛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앞으로 사무실에서 웃지 않겠습니다. 웃어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동료들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주던 사람들은 농담으로 맞받아 처주고는 했다. "K, 많이 힘들구나? 상담   받을래?" 혹자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는 했다. "그럼 웃을 때마다     맞자". "뭐라는 거야 갑자기." 대개  둘로 나뉘었다.  번째 부류도 있었는데, 이들이 제일 재밌었다.  어처구니 없는 농담에 자신의 권위가 도전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화와 고성이 오가는 번잡한 사무실 속에서도  말을 귀신 같이 담아듣고는 잽싸게 다가왔다.


“이누마. 그러면 너는 이제부터 농담도 안하겠다는 거냐? 사람들이 바보인 줄 아나본데, 웃고 싶을 때만 웃고 그럴 수 있 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식아." 그들은 항상 내가 아니어도 무언가에 화나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원인이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나를 불러낸 걸 수도 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준다면 참으로 고맙겠지만, 이해할 수 없던 인간상에 대해 명확한 언어를 할당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기에, 간접적인 경험을 빌리지 않고는 글잡이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군에서 자대 배속을 받아 2년 간 일하게 된 내 사무실의 최선임자이자 유일한 간부이신 모 원사님께서는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매우 적절한 예시를 제공해주었다.


군 생활 경력 30년차 부사관으로, 비록 계급은 조카 뻘인 장교들보다는 낮았지만 '짬’을 통해 익힌 노하우들 덕에 인사행정 담당이던 우리 부서의 실세로 군림하였다. "앞으로 사무실에서 웃지 않겠습니다. 웃어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던 그 어느 날, 늘 그랬듯이 난 내 맞선임에게 이런 식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모 원사님께서는 언제 들으셨는지, 책상에서 졸음을 참으시다가도 벼락 같이 달려와 나에게 한바탕 으름장을 놓으셨다. "이누마, 그러면 너는 이제부터 농담도 안하겠다는 거냐? 사람들이 바보인 줄 아나본데, 웃고 싶을 때만 웃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식아. 데려와 봐. 다 사회생활하면서 맞춰주고 하는 거지."


참으로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는 표정으로 일관해오는 편이 내 신상에 이롭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기에. 그 가식적인 표정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모진 말을 하면서도 얼굴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제가 여기 있잖습니까...?" 어쩌면 그래서 상대방은 늘 내 앞에서 핏기를 잃어갔는지도 모른다. 늘 내 내면에는 삐딱한 감성의 철학자가 들어앉아 있어서. 공손한 희멀건 얼굴로 그 뒤틀린 심보를 한 데 더 꼬아놓고는 했다. "재미없는 말에도 웃어주라니 그건 너무 잔혹한 처사이십니다." 그러면 원사님께서는 당신의 체구만으로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사무친 세월들을 토로했다. "너네가 지금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 때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할 수조차 없었어. 상대방 눈 마주치면 싸우자는 걸로 우리는 알아들었다니까? 선배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그 날로 작살나는 거여. 배꼽 잡는 시능부터 해서, 승넘어갈 듯이 막 그냥. 응? X빠졌어, 그때는 임마."


"설날을 맞아 휴가를 써서 친척들 모임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원사님의 제언에 "얼굴만 맞대는 행사에 큰 의미를 찾기 힘듭니다."라는 내 답변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들어 나는 너네를 볼 때마다 무섭다. 무언가를 굳이 해야 되는 게 아니야. 그저 간만에 얼굴을 볼 핑계가 생겼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야. 얼굴이라도 언제 보겠니. 그때가 아니면, 요즘 노인들이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하는 줄을 아니? 제발 살아있게, 다음에 볼 때까지. 그거야. 얼굴을 마주보고도 떨어지지를 못해, 좀처럼. 다음에는 영영 못 만날까 봐. 너희 세대가 기성세대가 곧 될 텐데, 참 무섭다 얘, 나는, 그런 전통들이다 없어지고 나면 남을 게 없을까 봐 참 무서워."하고 덤으로 혀도 몇 번이나 끌끌하고 차 주셨다. 그리고는 두 눈을 부른 뜬 채로 내 앞에 서서 응당한 반응을 기다리셨다.그러나 나는 말씀이 다 끝날 때까지 앙상하게 때인 원사님의 쇄골을 바라보며 속으로 빈지노의 <Friday Move>를 부르고 있었다. 젊은 백만장자 래퍼가 청담동 펍에서 24살의 여대생을 꼬진다는 몽환적인 가사였다. 쟈스민향 피어오르는 청담동 펍. 20대 백만장자 빈지노와 원사님만한 아빠가 있을 24살의 여대생. 그리고 앙상한 몸에 군복을 걸치기가 무섭게 매일 아침 7시 출근하는 일을 30년간 반복해온 50대 남자.


이 세상은 대체 미쳐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빈지노의 삶과 원사님의 삶, 이 둘은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 세상의 한 편에는 명절이 될 때면 무거운 기지개를 키며 일어난 뒤 10년 된 소나타 세단을 이끌고 약에 받쳐 부모님께 제자를 드리러 갈 원사님이 있었다면 다른 한 편에는 명철을 맞아 코타키나발루로 떠날 빈지노가 있었다. 빈지노는 빵빵한 갑바를 가지고 있었고, 원사님은 앙상한 쇄골을 가지고 있었다. 빈씨에게 가족과 전통은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지만, 원사님처럼 심각한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원사님께 '빈지노'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반대로 빈지노에게 원사님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망상은 길어져서 갑자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우연히 엿보게 된 원사님의 체념의 순간으로까지 나아갔다. 1달 전 쯤, 나는 식도염에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된 적이 있다. 식도암에 걸린 적이 있었던 원사님이셨기에, 당신은 직접 차를 끌고 나를 바래다주기를 자처하셨다. 어색한 공기만 감도는 운전석에서, 그분은 관대하게도 허심탄회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너는 나중에 뭐 할 거냐?"" “저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글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면 그는 못 들었다는 듯이 자신이 직접 질문에 대답을 했다. "나는 말야, 니네 나이로 돌아갈 수 있으면 뭐든 다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때는 시골 촌구석에서 라이타 하나로 불 켜가면서 책 읽고 그랬거든? 아는 거라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거. 그것밖에 없었제. 그 당시에 옆에서 조언 한 마디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참 아쉬워." 누군들 그렇게 안 살았겠어요? 당시 치고 그렇게 안 찬 사람이 드물결요. 기어코 내 안의 진리의 나팔꾼이 입을 열려고 하였으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원사님의 아련한 눈빛은 내가 아니라 먼 과거의 자신에게로 향해 있였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빈지노의 <Friday Move>를 불렀다.


그런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내 마음에 호소를 할 때면 나는 어느새 공손한 모범생으로 회귀하고 싶은 학창 시절의 충동에 사로잡혔다. 고개를 떨구고 공손한 희멀건 일병이 되어, 원사님께 내 항복을 전하고는 했다.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찬척 모임에 다녀 오겠습니다." “아니 뭐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에헴."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망상도 종료되면, 원사님의 흥분도 나의 배배꼬인 심성도 어느샌가 가라앉아 우리 둘 사이에는 오버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어색한 침묵이 찾아오고는 했다. 그러면 그는 때로는 만족한 표정으로, 혹자의 경우엔 여전히 분이 안 풀린 심사를 오장욱부에 드러내놓고는 자기 자리로 들어가/자신의 동료들/에게 2년 만의 안부 전화를 주고받고는 했다. '그래, 민식이 임마. 잘 사나? 아 애가 둘이여? 아따 참말로 시간 빠르네, 나야 잘 살제, 아니, 뭔 소리여, 딸 애 대학 들어갔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노인들의 애기에 자신이 말해놓고도 상당한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실제로 그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고단한 인생을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법한 나에게도 그 모습을 차마 숨길 수 없을 만큼 그에게는 모든 것이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명백했다. 마치 빈지노에게는 설날에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떠나는 게 명백했던 것처럼.


그건 도무지 코미디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주는 희국인으로서의 놀라운 일관된 능력에 나는 늘 원사님이 자리를 비우고 나와 선임들만 남게 되면 한바탕 대뜸 웃음을 터드릴 수 밖에 없었다. "푸하핫." 그러자 백병장이 말했다. "워야. 앞으로 사무실에서는 안 웃겠다며, K야." "실은, 오늘 하루만은 절대로 웃지 않는 사고실험을 다짐했었습니다. 정말로 웃기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하하 그런데 원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지 말입니다." 그러자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어보이는 와중에 맞선임 모병장이 무언가 짚인다는 듯이 한 마디를 거들어주었다. "풋, 안 웃어야할 마땅한 이유도 없다는 건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안 웃어야할 마땅한 이유도 없잖습니까?"


"가벼운 우리 존재에 대해서 무거운 마음을 가질 이유도 없지." 그가 내뱉었다. 그렇게 그는 원사님과 더불어 참으로 영원히 도래할 나의 기억이 되었다. 매번 사무실에서는 이런저런 사건들이 동일한 패턴으로 '영원히 회귀'되었다.내 앞에 놓인 존재가 나와 얼마나 이질적인가를 몰랐는가? 알았지만 나는 항상 바로 고개를 숙이는 습관은 제쳐두었다. 언제나 '희귀될' 이런 부류의 군상들에 대해 나는 웃어넘기기보다는 웃지 않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원사님은 나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으셨고, 나의 어설픈 연기는 매번 그에게 갈굼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우리의 현실적인 삶을 논할 때만큼은, 웃어야할 이유가 웃지 말아야할 이유보다 많다는 것, 그건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 변함없는 안타까운 진리로서 남았다. 그것은 일종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비극에 무뎌진 채로 살아간다는 비극에 비하면 작은 비극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바로 그 비극을 참아내는 훈련이라면, 절대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도 때로는 생활관 침대에서 동기들의 대화를 듣고자 하니 화가 밀려 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퇴근을 하고 생활관으로 돌아오면, 찰나의 환희도 잠시, 곧이어 TV가 켜지고 남정네들이 모여든다. 마치 채팅봇을 틀어놓은 것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누구가 예쁘네, 아니 Y가 훨씬 더 예쁘네", "정치인 X가 그렇게 더럽다더라", "우리 간부 W는 오늘도 X발놈이더라" 나는 핸드폰을 켜고, 헤드셋을 깊게 눌러쓴다. 아마 어딜가든 펼쳐질 법한 젊은-남선들의 대화일 것이지만, 바로 그들의 안일함이 나에게는 순수한 고통이었다.


'빈지노'의 금요일밤을 보고 단순히 음탕하다고 말하며 속으로는 부러워했을 그들에게, 금요일 밤을 보내는 정해진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는 건 원사님께 굳이 인간은 웃을 필요가 없다는 걸, 그리고 추석에는 반드시 가족에게 갈 필요가 없다는 걸 설득하는 일처럼 부질이 없었다. 그건 도무지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래도 그들이 외치는 앵무새 같은 구호에 떨리던 눈꺼풀은 그 음험함을 직감한 듯 했다. 반달 모양으로 구겨져서는 입술을 위쪽으로 한껏 말아 당겼다. 그러자 그럴 듯한 인공적인 미소가 생겨났다. 부대에서 상관으로 2년이나 모시다가 보내드린 원사님께서 도덕률을 운운하시며 그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앞에서 떠나지 않았던 내 입가의 냉소는 나를 옥죄던 '짐승들의 대화' 만큼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니체에 따르면, 반복되지 않을 것들은 무거울 수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히틀러는 영원히 반복될 원사님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존재다. 그러나 그 역시도 2년 후에는 존재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소심한 반박들이 언젠가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원사님의 존재에 대한 소박한 존중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그와 그의 삶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되면 그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이 끝내 미지에 머물지는 않을까. 몰랐다고 해서 서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니까 누구나.

 

병장 김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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