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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운 Mar 11. 2021

일상 vs 살인

무엇이 더 '폭력'적일까?

Patrick Bateman: "You can shake my hands and feel my warmth but there is no real me. There is just an idea of a Patrick Bateman, an image."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에 나오는 주인공의 초반 독백 부분.


패트릭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하나의 진리를 폭로한다. 표상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한 하나의 표상일 뿐이다. 우리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공명할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한 합일을 향한 환상은 우리를 불행에 빠뜨린다. 영화 속에서 패트릭은 이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내린 죽음의 사자로 기능한다. 그는 자신의 살인 행보를 주변인들에게 고백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넌 패트릭이잖아, 무슨 살인이야." 왜냐하면 패트릭은 그들이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훌륭한 한 개의 축이 되기 때문이다. 하버드를 나온 금융인 - 회사에 찾아가면 어떤 옷차림을 입고 어떤 일을 해주는 사람 - 나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


그의 살인은 이러한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수단이 된다. 그는 창녀들이나 주위 여성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관람하듯이 성관계를 가진 뒤 그들을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한다. 매번 섹스 전에 그가 하는 의식이 있는데, 바로 음악을 틀어주며 자신의 음악 비평을 들려주는 것. 이 순간 만큼은 타인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그에게도 감정의 전율이 찾아온다. 이때만큼은 '피해자'인 그녀들도 그의 말을 귀기울이지 않는 '방관자'가 된다. 패트릭이 그녀들의 속사정이 궁금하지 않듯이, 그녀들 또한 패트릭의 돈과 외모 때문에 따라왔을 뿐, 그의 음악혼 따위에는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딱 한 번, 그가 살인을 행하지 않고 여성을 놓아줄 때가 있다. 바로 자신의 비서 진이다. 진은 패트릭의 정신적 빈곤을 꿰뚫어봄과 동시에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은 여성이다. 패트릭 집에 온 질은 그에게 인간적인 질문들을 해가며 패트릭을 매우 난처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과 시계가 얼마인지, 연봉, 헤어스타일, 패션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다. 마치 평범한 현대인처럼, 그는 일상을 강요받는 직장인이다. 당황한 패트릭은 진에게 당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며 돌아가게 만든다. 음악 자랑 또한 하지 못한다. 후에 질에 의해 패트릭의 살인이 실은 전부 망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음 발췌문은 패트릭이 자신의 살인이 몽상이라는 걸 깨닫고 난 뒤에 내뱉는 독백이다:


Patrick Bateman: "There are no more barriers to cross. All I have in common with the uncontrollable and the insane, the vicious and the evil, all the mayhem I have caused and my utter indifference toward it I have now surpassed. My pain is constant and sharp, and I do not hope for a better world for anyone. In fact, I want my pain to be inflicted on others. I want no one to escape. But even after admitting this, there is no catharsis; my punishment continues to elude me, and I gain no deeper knowledge of myself. No new knowledge can be extracted from my telling. This confession has meant nothing."


해석: "더 이상의 장벽 따윈 없다. 온갖 악랄하고 광란스러운 상상과 함께 느껴지던 공명의식, 그로 인해 내가 끼친 재앙, 그 모든 것들을 향한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을 넘어선 지 오래다. 내 고통은 지속적이고 생생하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고통이 타인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그 누구도 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질 않길 바란다. 그들도 내가 느끼는 고통의 반이라도 느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를 인정한 후에도 카타르시스는 찾아오지 않는다. 나의 범죄를 향한 단죄의 칼날은 끊임없이 나를 뒤좇는다. 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가 불가능하다. 나의 이야기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고백은 어떤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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