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간소하게 살기

by 시우

이사 수준으로 가진 것을 정리했다. 책, 노트, 가재도구, 옷에서부터 불필요한 메일이랑 휴대폰 목록까지.

가진 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부피를 줄인다는 의미만이 아니라서 들여놓기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다. 물건이란 늘 지난 시간의 향이 배어 있기 마련이라서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지난 시간에 대한 정리 또는 망각과도 연계되는 일이라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가지고 싶어 피가 끓던 시기는 진즉 지나갔고 이제 내가 지닌 것을 감사하며 활용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기보다는 버리기, 치장하기보다는 정리하기, 지니기보다는 활용하기, 화사하고 다양한 것보다는 간소하고 정갈한 것, 간소하나 섬세하니 사는 것에 맘이 쏠린다.

이제 서서히 비워가야 할 때. 머릿속의 생각, 입안의 말, 위 속의 밥뿐만이 아니라 지닌 것이나 생각들을 줄이고 가지런히 정리할 때. 물건 역시 사람을 닮아서 비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하나씩 비울 때마다 그만큼 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386MB에서 GIGA, 5G로 바뀌는 이 시대에 몸 담고 살아온 인연 탓에 시간이 주는 멀미가 더 심하다. 가진 것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의 속도를 감당해낼 재간도 없으면서 그저 허겁지겁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구나 싶다.

다행히 이젠 그냥 내 속도로 찬찬히 살펴보며 살아도 괜찮을 때다. 하나를 들이려면 두 개를 버려야지,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그리고 풍성하게 누려야지, 맘먹는다.


거친 봄바람에 숲의 나무들이 몸부림을 친다. 거대한 녹색 파도가 너울대는 것 같다. 불필요한 것, 시원찮은 것들은 죄다 떨궈지겠다. 바람은 위로만 웃자라는 것을 막고 직경 생장을 촉진하는 바람직한 자연현상이란다. 바람을 많이 맞은 나무는 밑동이 튼실해져서 쉽게 꺾이지 않는단다. 나무식의 정리 같다.

기본에 충실할 것. 사람은 여전히 자연에서 배울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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