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여왕벌
한 달 전 일이다.
오랜만에 천변으로 아침 산책을 나섰다. 소쩍새가 울고 아카시아 향기가 날리는 계절 즈음은 어디를 가도 아름답고 싱싱하다.
조금 늦게 나선 탓에 이미 해가 올라있다. 천변 산책로 주위로는 보랏빛 갈퀴 나물이 덤불을 이루고 이제 막 새순을 내미는 칡넝쿨의 순, 가끔씩 꽃대를 올린 화사한 꽃 양귀비나 애기똥풀, 이미 한풀 꺾인 해당화 민들레 등등으로 화사하다. 해 지난 마른 가지 아래로 새닢을 내민 억새가 푸르고 촘촘하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한동안 물속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었다. 송사리 떼가 무리 지어 바삐 다닌다. 그 많은 떼들이 각기 한 몸인 듯 리드미컬하게 방향을 바꾸며 유영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중에는 몸집이 제법 커서 새끼손가락 두 배 길이만 한 고기 떼도 보인다. 저 정도 크기라면 아마도 송사리가 아닌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어종일 수도 있겠다. 이들은 원을 그리며 나아가다가 가끔씩 몸을 급히 옆으로 누이는데 그때 드러나는 몸통의 은빛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얼마 전 다리를 건너다 내려다본 전주천에는 내 팔뚝만 한 잉어(?) 몇 마리의 우아한 자태가 보였다. 그중 한 마리가 풀 섶에 머무르는 다른 한 마리 주위로 헤엄쳐 다니며 자꾸 몸을 뒤집어 보이는 것이었다. 봄철이라 산란기여서 그러는지 그때마다 드러나는 선홍빛을 머금은 은빛 비늘은 황홀하게도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이 왜 자꾸 몸을 뒤집는지는 온 국민의 지식 창고인 컴퓨터 정보에도 나오지 않으니 그저 궁금증으로만 끝날뿐이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 궁금한 것 천지다.
징검다리를 건넜는데 바로 옆 갯 버드나무 가지가 소란하다. 살펴보니 가지 주위로 접착제를 듬뿍 바르고 벌을 붙여놓은 듯 벌이 두텁게 모여있고 그 주위로도 벌 천지였다. 붕붕거리는 벌들이 무서워 스쳐 지나갔다가 되돌아오며 보니 여전한 모양새다. 벌집은 아닌 거 같고 궁금하던 차에 나처럼 그곳을 지켜보던 아저씨 한 분이 설명을 해준다. 여왕벌이 분봉하려고 나와서 임시로 머무는 것이란다. 지금 주위로 분주히 날아다니는 것은 정찰병 벌인데 이들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돌아와 알려주면 여왕벌이 움직일 거고 그러면 일벌이 죄다 따라서 날아갈 거라고. 저 밀집한 벌 안에는 여왕벌이 있는 거란다.
"하, 참 벌통만 있으면 벌을 받겠구먼..." 양봉에 일가견이 있는 분인지 애석해하며 그곳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벌들의 분봉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새롭게 일가를 이루려고 대단한 발걸음을 내디딘 젊은 여왕벌,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충성스러운 일벌들이 좋은 장소를 찾아 보금자리를 마련하길 바랐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던 말던 세상의 목숨 있는 것들은 죄다 제 자리에서 삶에 열심이다. 조화로움, 제자리에 있을 것이 있음이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했다.
푸르른 풀숲 위로, 잔잔한 수면 위로 싱그러운 바람과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오월 아침이었다.
( 그 이틀 후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벌은 자취도 없었다. 어딘가 좋은 장소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으리라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