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긴 일정이었다지만 이번 여행 후유증은 좀 오래간다.
이 후유증이야말로 여행의 뒷면이다. 싫지만 피할 수 없는.
방의 구피들과 베란다의 화분은 동생이 보살펴줘서 전과 다름없이 싱싱하다.
집이야 청소하고 빨랫감 정리하면 변함이 없다. 어디 메인 곳이 없으니 딱히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한데 시차가 커서 생체 리듬이 문제인지 뭔가가 붕 뜬 느낌이라 생활과 자꾸만 겉돈다.
옅은 우울 같기도 하고 무력감 같기도 한 뭔가가 내 안에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의무적으로라도 곧바로 뛰어들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없어서일까. 여기저기 사람들과 연결점도 구태어 만들지 않으니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난 내 지점에만 오롯이 머물 뿐이다.
12년도 훨씬 넘게 쓴 세탁기의 소음이 수명을 다 한 징조라 새 것을 장만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AS 기사님에게 들었다. 여행 다녀와서 사야지 맘먹었는데 세탁기 사러 나갈 일이 태산 같아 매일 미적이고 있다.
아귀가 착 들어맞아야 할 톱니바퀴가 궤도에 들지 못하고 허공에 미끌거리며 떠 있는 느낌이다.
여행 기간이 좀 길어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선명해졌다. 뭐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 책상에서 읽고, 쓰고,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익숙한 벗들과의 일상적 수다가 생각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흥분이나 설렘 같은 감정과는 오래전부터 거리가 멀다.
남의 집을 빌려서 지내는 일은 가족과 함께라면 너무도 빨리 익숙해진다. 아무리 멋진 경치도 일주일을 반복해서 보면 늘 있어왔듯 덤덤한 일상이 된다.
그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소 영향을 줄지는 몰라도.
그래도 그렇지, 이런 감정의 뿌리는 무엇일까. 나이 탓인가? 이리저리 내 안 구석구석을 뒤적여본다.
어쩜 그렇게 그립고 하고 싶었던 일이란 게 실은 부끄럽게도 보잘것없는 실력이란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만한 수준을 갖췄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뜬금없는 생각 때문인가? 그러다 보니 내가 참으로 시시해 보여서?
그 생각 끝에 아무리 뒤집어보고 헤쳐봐도 내가 잘하는 것, 버젓이 내세울 게 없어였을까? 그랬을까?
아니면 이번에 헝가리에서의 참사 때, 가까운 곳에서 그 일을 지켜보며 느꼈던 감정 때문일까?
참사 다음날 비 오는 아침,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탁한 물살로 힘차게 흐르던 다뉴브강.
며칠 후 참사 장소에 세워진 노란 크레인, 검은 연기를 내며 힘겹게 그곳으로 다가가던 바지선뿐 너무도 다름없는 일상의 모습을 부다 궁전에서 오랫동안 내려다보며 느꼈던 그 감정 때문일까?
게다가 거기를 떠나오기 전날 다시 나가본 강변에서 본 화려한 불꽃놀이와 요란한 젊은이들의 축제를 보며 느꼈던 쓸쓸함.
어쨌거나 며칠의 뭉기적거림 끝에, 내 여행을 모르고 몇 번 연락 했던 친구를 만나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단체 문자로 온 동창의 모친상에 대리 조문을 다른 친구에게 부탁했다.
서서히 내 몫의 피치 못할 일상적인 일을 하며 익숙한 자리를 찾아간다. 또다시 일상의 습관 속으로.
몽롱한 물속에서 헤매다 차가운 수면 밖으로 푸~ 하며 얼굴을 내민 것 같다.
까짓, 좋아하는 일이지만 좀 시원찮은들 어떠랴. 좋아하는 일이 있고,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는데 지금 이 순간 내가 머물 시공간과 감각이 있다는 감사한 생각도 내심 스멀스멀 올라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