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사라진 풍경

by 시우

예전에 말이다. 흥부 놀부 이야기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제비를 알았다. 제비뿐인가 박넝쿨이 초가지붕 위에 올라 여름이면 하얀 박꽃을 피우고 졸망졸망 박을 맺고 키운다는 것도 웬만하면 다 알고 있었다.


봄이면 늘 제비들이 처마 밑이나 대청마루 위 천정 귀퉁이에 집을 짓고 나서 살림을 차렸다. 여름철이면 부지런히 부화한 새끼들을 먹여 살리고 가르쳐서 가을이면 따듯한 곳을 찾아 날아갔다. 동네 꼬마도 다 아는 일이었다.

솔직히 제비가 꼭 달갑지만은 않았다. 제비집 아래로는 늘 제비 똥이나 깃털들이 떨어져 지저분했다. 여름이면 주로 대청에서 밥도 먹고 쉬는 공간으로 쓰는데 좀 성가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비를 구박하지는 않았다. 제비집 아래로 나무 받침대를 해주거나 마루 청소를 한 두 번 더 하는 것으로 알고 제비네 가족을 지켜보며 함께 살았다. 아침이면 요 녀석들의 꽈리를 부는듯한 지저귐도 만만치 않았다. 전깃줄에 주루룩 않아서 쉬는 모습도 더운 여름철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제비 보기가 힘들더니 아예 내 기억에서조차 사라졌다. 이제 제비는 동화에나 나오는 새가 되어버렸다.


그런 제비를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다시 만났다.

크로아티아에서였다. 두브로브니크 고성에서 버스로 한 10분 정도 벗어난 해안가 마을 리조트에서다.

뒷베란다에서, 공수해간 오징어에 땅콩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며 쉬는데 눈에 익은 검은 새가 우리 머리 위로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베란다 귀퉁이 양쪽에 제비집처럼 보이는 둥지가 있었다. 옛 기억과 좀 다르다면 제비 집을 천정과 거의 맞닿게 지어서 위쪽 틈새 공간이 거의 없다는 점 정도뿐.

그리고 설마 했는데 정말 그 틈새로 수시로 들락거리는 제비가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저녁녘이면 수많은 제비들이 활강하며 하늘을 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마치 어렸을 적에 늘 보던 여름 풍경처럼. 그곳이 마치 어려서의 우리 마을이나 되는냥 푸근하게까지 느껴졌다. 이곳은 아직까지도 제비가 머물만한 곳인가 보다 싶어 부러움까지 일었다.


딸애는 신기해했다. 동화에서나 접했을 뿐 난생처음 보는 제비였으니. 내 나라에서 못 본 제비를 남의 나라에 와서 보는 거였다.

다음날 보니까 제비집 아래 작은 알의 껍질 일부분이 떨어져 있었다. 이걸 보니 새끼가 부화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괜히 집적대면 제비가 신경 쓸까 봐 뒷베란다의 왕래를 삼갔다.


그러고 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서 사라진 풍경이 참으로 많다. 철철이 바뀌는 계절에 따라 우리와 함께 했던 동식물들과 그에 어우러진 생활까지.

난 그래도 다행히 앞에 산을 끼고 살다 보니 요즘도 아침저녁으로 뻐꾸기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가끔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도 듣는다. 이년 전에는 앞의 전주천에서 수달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지고 없다.


장마에 들었다는 소식뿐 비는 안 오고 습한 날씨에 찌뿌둥한 몸을 누이고 밖을 바라보다가 저번에 본 제비가 생각났다.

앞 숲의 나무들 우듬지 쪽 연둣빛 새순 아래 어디쯤 까치집이 몇 개 있다. 요즘은 요 녀석들만 하늘을 날고 있다. 매일 아침 깍깍거려도 반가운 손님이 올 일 없는 도시생활이 오늘따라 유난히 갑갑하고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

비라도 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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