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

그땐 그랬어

by 시우

반질거리는 검은 무쇠솥이 좌우로 걸린 아궁이 둘, 잘 다져진 흙바닥, 부뚜막 맞은편으로는 솔가지 나뭇짐이나 가을이면 추수하고 남은 콩 섶이나 볏짚, 장작을 쌓아두는 너른 공간. 앞마당으로 면한 부엌문 외에 뒤란으로 이어지는 작은 부엌문. 작은 부엌문 앞쪽으로는 우물이 있고 오붓한 뒤란에는 양지에 자리한 장독대.

내가 그리는 정지 또는 부엌의 풍경이다. 한데 내 기억으로는 이런 부엌을 가진 집에서 산 기억이 없다.



네댓 살 때 살던 광주 외갓집은 커다란 일본식 가옥이었다. 그런데다 내 기억은 부엌보다는 복도에 이어있던 다다미방과 화장실, 욕실이나 정원, 집 뒤편의 채소밭에 머물고 있다. 그다음 서울의 집은 단독 주택이 아니었고, 섬에서 살 때의 집은 새로 지은 관사여서 당시로는 신식이던 입식으로 꾸며진 부엌에다가 구들 밑으로 연탄 화로를 밀어 넣다 빼냈다 하는 네루식 부엌이었으니 거리가 삼천리다. 외가의 한옥은 그 비슷한 것이었으나 일하는 사람이나 군식구가 하도 많아 내 기억에 부엌에 출입했던 기억이나 뒤란의 풍경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방이나 골방, 다락, 마루의 기억이라면 몰라도.

그렇다면 집안이 기울어 도심의 커다란 집을 팔아 빚을 치르고 들어간 변두리 동네의 그 초가집 부엌과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들이 조합된 공간에 내 기억이 머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인 추론일 것이다.


당시에 할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변두리 산동네였다. 어른들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는 것도 참 힘들었겠다고 지금에야 생각이 미친다. 어른들에게는 참으로 힘들었을 그 시절이 역설적으로 내게는 참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도심에서 지낸 기억은 특별한 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

동네 앞의 너른 들과 뒷산의 완만한 언덕, 보고 들은 것이 없어(당시 어른들의 평가다) 시망스럽고 부모 말 잘 안 듣는 억센 애들 틈에서 뒤섞여 지내면서 보낸 시절이었고 늘 북적이던 군 식구 없이 온전히 우리 가족만 어울려 지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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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좋으신 할아버지는 산 아래 자리한 뒤란에 졸졸 흐르는 물길을 잡아 작은 옹달샘을 만들어주셨다. 그 곁에는 앵두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텃밭의 푸성귀는 그 옹달샘의 물을 바가지로 퍼서 씻었고 여름철 그 물을 길어 뒤란에서 등목이나 목욕을 했다. 깊지 않은 터라 수량이 많지 않아 주로 여름에 요긴하게 썼다.

곧 부엌도 흙으로 바른 부실한 부뚜막을 시멘트로 보수를 하고 채양을 달아내 나뭇짐을 들일 광까지 붙여서 넓게 만들었다.


부엌에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났다. 부르르 넘친 밥물이 졸아붙는 냄새, 구수하니 익어가는 밥 뜸 들이는 냄새, 밥을 짓고 난 후 잦아든 부엌 아궁이의 잿불에 석쇠를 얹어 들기름 발라 재운 김을 굽기도 하고 석쇠에 귀한 생선을 굽기도 했다. 겨울에는 큰 솥에 불을 지펴 물을 데우고 아궁이 곁의 커다란 통에 더운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

보릿짚을 땔 때는 짚의 마디가 터지며 탁탁 소리를 냈다. 더 큰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땔 때는 불똥이 튀어 눈에 들면 큰일이라며 가까이 앉지 못하게 했다. 가끔은 겨나 톱밥을 땠는데 그때는 풀무에 긴 관을 달아 아궁이에 넣고 살살 돌려가며 바람을 일으켜 불을 땠다. 바람이 들어갈 때마다 푸르게 오르던 불길, 적당히 맞춰가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하는 불무질은 나도 해보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할머니 곁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앉아있노라면 아늑하고 몸이 녹아들듯 녹진해서 아늑했다.


난 마땅한 동네 친구보다 뒷집 할머니네 집에 가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 내 기억의 그 할머니는 늘 불을 때고 있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집과 달리 그 할머니네는 여름이면 보릿짚, 가을이면 볕 짚이나 털고 난 콩 다발, 겨울이면 뒷산에서 해온 마른 솔가지나 장작을 땠다. "배움은 없어도 경우가 바르고 입담이 좋다"는 평을 우리 할머니로부터 듣는 그 할머니는 나를 손주처럼 귀히 여겨주었다. 그 집 부엌에서 군불이나 밥을 짓는 그 할머니 옆에서 불을 바라보던 나른한 기억이 두고두고 날 따듯하게 했다.


하지만 곧 석유곤로가 들어오고 우리 집 부뚜막은 연탄 아궁이로 바뀌고 말았다. 내 부뚜막의 기억은 여기에서 끊겼다. 그러나 지금도 어쩌다가 시골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부뚜막,아궁이의 풍경은 지난 시간의 풍경과 함께 오감을 통해서 내게 다가온다. 순식간에 내 마음은 할머니 곁에서 곁불을 쬐며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듣는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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