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이불 밖은 위험해!”가 진짜 현실이 되었다. 한동안 지낼 만하다 싶었는데 광복절 연휴 이후 코로나가 폭발 세를 보이며 다시금 우리 일상을 조이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집안에 90줄의 어르신들이 세분이나 계시니 모든 것을 더 삼가게 된다.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공벌레처럼 잔뜩 움츠린 태도로 집 안에서만 지내는 기간이 반년 가까이 되어가니 없던 우울증도 도질 지경이다. 가끔 저녁 후에 차를 가지고 가까운 교외나 숲으로 나가는 것으로 겨우겨우 나를 달래고 있다.
지난주 26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이 개봉되었다. 그 감독을 좋아하는 딸은 몇 달 전부터 테넷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아이맥스 영화관의 로열 석을 미리 예매해놓은 상태였다. 한데 하필 다시 이지경이 되어버리니. 수시로 오는 안전 문자에다 집 근처의 음식점들이 확진자 경로로 거론되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런 때라 밀폐된 공간인 극장에 간다는 것이 께름칙한지 딸은 “엄마, 가면 안 되겠지? 가도 되려나?”하며 한참을 망설이더니만 그냥 취소하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던 영환데... 내가 그 자리를 예매하려고 얼마나 애썼는데...”라며 속상해한다. 나 역시나 그 감독의 영화라면 놓치고 싶지 않아 은근히 기대했던 터였다. 딸이 엄청 좋아하는 마블 시리즈를 같이 즐기기는 힘겹지만 이건 같이 보기도 딱 좋은데.
딸이 하도 안쓰러운지라 “그럼 우리 평일 첫 프로를 가서 보자. 전날 방역도 했을 거고 또 조조 프로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라며 달랬다.
드디어 오늘 아침 9시 20분 가까운 롯데 시네마로 조조 프로를 보러 갔다. 예약 때 딱 한 명 예약한 것을 확인했었다. 백화점 주차장 입구는 불을 꺼놔서 들어가기가 으스스할 정도였고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KF94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올라가니 영화관 로비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상영시간이 되었는데 개찰구조차 열지 않는다. 옆에 있는 벨을 누르니 한참 후에야 직원이 나온다. 너른 상영관에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 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고 나서 다시 두 사람이 왔으니 총 5명이 영화를 본 거다.
하도 오랜만에 극장에 와서인지 전에 짜증 나던 광고조차도 신선했다. 다른 영화 예고편을 안 해주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영화관 안은 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확실히 숨이 답답했다. 하지만 벗기도 께름직했다. 난 영화를 볼 때는 오로지 영화만 보는 형이라 주위에서 팝콘이나 음료로 인한 소음이 늘 거슬렸는데 오늘은 영화 시작 시간까지 가 마치 심산유곡에 와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적당한 냉방, 조용함, 기막힌 사운드와 영상, 최고의 영화 감상 조건이 충족된다.
역시 놀란 감독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전작, 인터스텔라나 인셉션에서 보여줬듯이 그는 계속 시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관심사는 어디까지 확장할지 궁금해진다.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당과 미래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해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는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과거를 바꿔야 한다. 시간을 거스르는 '인버전'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에서 동시에 협공하는 미래 세력에 맞서 시간을 이용하는 작전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이 얽히는 전개이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연결된다.
자주는 들었으나 잘 모르는 물리학 용어의 개념이라도 얼추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겠다. 엔트로피, 열역학... “테넷”이 내게 그 정도는 알아야 영화를 이해 한다고 말한다.
놀란 감독이 20년 동안 아이디어를 개발해나갔고 6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썼고 '인터스텔라'를 함께 했던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킵 손이 참여해서 과학적인 사실을 감수했단다. CG를 싫어하는 감독의 철학에 따라 비행기 폭파 장면을 찍으려고 보잉 747기를 실제로 사서 격납고 폭파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온라인 한 줄 감상평에 “무엇을 스포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스포를 보더라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함.”이라는 말을 보고 빵 터졌는데 정확한 표현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은 “얼른 집에 가서 자료를 찾아봐야지.”였다.
집에 와서 씻고 곧바로 영화에 대한 자료 찾기, 이해하기로 오후가 다 간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물리학에관한 개념은 모르겠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내 한계 안에서 짐작만 할 뿐.
코로나 시대에 참 대단한 영화 한 편 보기다. 딸 덕분에 감행한 즐거운 모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