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
집에 온종일 머무는 날이 계속되니 이거 저거 못 했던 것이나 못 누리던 것을 시도해본다. 드라마 몰아보기나 집에서 뒹굴며 영화 보기도 그중의 하나다.
영화 '컨테이젼'을 봤다. 느긋이 편하게 영화를 보다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난 2011년 개봉했으니 10년이 지난 영화인데도 마치 신작인 듯 생생하다. 출연진이 맷 데이먼, 귀네스 팰트로, 케이트 윈즐릿, 마이클 더글러스 등 스타급인데도 당시 극장가에서는 흥행이 시원치 않았다가 이번 코로나로 인해 재조명되는 영화다. 10년 전에 이미 요즘의 상황을 그대로 예견한 듯한 내용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영화에서 최초의 감염자로서 죽음을 맞은 역을 맞았던 귀네스 팰트로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이미 영화에서 겪어봤다. 안전을 지켜라. 악수하지 말고 손을 자주 씻으라"라고 SNS에 글을 남겼다.
팰트로가 연기한 인물은 'MEV-1'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홍콩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뒤 그녀는 심하게 앓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아들도 이내 목숨을 잃는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남편은 면역력을 가진 것으로 연출된다. 남편은 질병의 이름조차 모른 채 격리된다. 한편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곧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을 감염시킨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서는 바이러스를 조사하기 시작하고, 세계보건기구는 홍콩과 마카오에서 최초 발병 경로를 추적한다. 이 와중에 퍼지는 음모론과 이득을 취하기 위해 퍼뜨리는 가짜 뉴스.
영화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를 누비고 공공장소의 문 손잡이 등을 만지는 장면을 부각하면서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마스크를 하지 않아 삽시간에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모습, "접촉을 통한 감염이므로 얼굴을 만지지 말라"라고 하는 방역 학자의 말 등은 코로나 19의 전파 양상 그리고 예방 수칙과 일치한다. 발열과 기침 등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감염의 위험 때문에 거부되는 장례식, 관도 없이 밀봉된 사체 봉투에 넣어져 집단으로 땅에 매장되는 시신, 치료 약도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바이러스. 치료를 요구하며 병원 앞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과 부족한 병상 수, 이 틈을 타 사기를 치고 이익을 노리는 자들까지.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곧 예견되는 백신을 우선 맞으려는 사람들의 아우성까지.
영화에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무심한 듯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내게는 가장 돋보였다.
불도저로 야생의 밀림이 파괴되고 서식지를 잃은 박쥐는 돼지 사육장으로 옮겨온다. 박쥐의 배설물을 먹은 돼지가 요리사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그와 만난 여주인공에게 전파되는 과정이 표현된다. 결국 사스, 에볼라, 코비드 19까지 모든 게 인간의 탐욕의 산물이다.
스콧 번스는 시나리오를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WHO에 있는 전문가 등 바이러스와 역학조사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는데 전문가들은 그에게 오싹한 충고를 몇 가지 전했다고 한다.
"전염병은 발발할지 안 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발발하느냐의 문제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가장 현명한 대처법은 백신이나 치료제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연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인간이 배우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