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의 출입을 줄이니 주로 집 안이 내 생활공간의 전부가 된다. 요즘은 날도 찬 데다 코로나 공포 탓에 심리적으로도 다들 위축되어있다 보니 단순한 일상이 더욱더 단순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밥하고 할 일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게다가 요즘 목 디스크로 심신이 불편하니 누워 지낼 때가 많다. 아침마다 나가던 요가 수업도 빼먹고 있으니 영 맥 떨어지는 일상의 반복이다. 책 읽기도 쓰기도 그리기도 다 책상에 앉아 목을 숙이고 하는 작업이다 보니 피하게 되니 이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누워서 책을, 그것도 팔을 뻗어 눈높이로 들고 읽자니 두꺼운 책은 피해야 되고 슬슬 짜증이 난다. 하필 읽으려던 책이 "코스모스"라 그 두께가 보통이 아니다. 며칠째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우주의 시공간에 푹 빠져보려던 마음이 무색하다. 겨우 도서관에서 빌려온 목 디스크에 관한 책 3권을 내리 독파하고 나니 심신이 곤하다.
내가 왜 사나?라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밥 먹고 치우고 빨래하고 정리하고... 뭐 요즘 인터넷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꾸미고, 격을 갖춰 사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겨우 일상을 힘겹게 이어가는 정도다. 이것저것 버리고 치울 것만 눈에 들어오지만 척척 해내지도 못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뭐 어느 때인들 별나게 산 것도 아니다. 늘 내 일상의 기본은 이랬다. 밥벌이에 충실할 때는 나름의 이유도 찾고 또 거기 나름 돌아가는 세계가 있으니 좀 더 바빴을 뿐. 그 직장의 세계 하나를 덜어냈다고 해서 내 삶이 더 풍족해졌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요즈음은 몸이 곤하니 머리만 바쁘다.
스콧 니어링은 주어진 하루 중 활동하는 12시간을 삼등분해서 보냈다. 생계를 위한 네 시간, 배움을 위한 네 시간, 이웃과 친교를 위한 네 시간.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충만한 삶이었다. 스콧 니어링의 삶은 내가 일을 그만둘 때 롤모델로 그렸던 생활 방식이다.
네 시간은 주방과 식탁을 오가다 보니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의 시간이고 책을 간간이 보거나 인터넷 강연이라도 들으니 뭐 그 네 시간도 질은 떨어지지만 그럭저럭. 이웃과의 친교라... 남의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은 일방적인 거라 친교라고 하기는 그렇고... 잔머리를 굴리며 아득한 생각의 늪으로 빠지다가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방을 닦다가 '왜 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 한데 한 생각 돌려보니 바로 지금 방을 닦기 위해 사는 것이더라고. 정성껏 방을 훔치고 나서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한잔 마셨지."
일상을 소중히 하며 가장 근원적인 것에 정성과 애정을 바치는 이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삶의 품격 같은 게 느껴진다. 밥을 하고 몸을 돌보는 일상의 사소한 일,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의식을 치르듯 경건하게 해내는 것. 그 사소한 일을 지속적으로 닦아나가는 일이야말로 대단하며 위대한 일이자 삶을 살리는 "살림"이고 "수행"이라는 데에 새삼 생각이 미친다. 마냥 평범하고 사소한 이 일이 지상에 나를 뿌리내리게 하고 내 삶의 뼈대를 이룬다.
짧은 겨울 해가 저물어간다. 곧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시금치를 데쳐 무치고 들깨 뭇국을 끓여야겠다. 이번 끼니 또 다음 끼니에도 이어서 또 다른 뭔가를 할 것이다.
벗어날 수 없고 무한 반복되는 이 일을 위대한 일인 양 수행하듯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그러는 사이 바람이 불고 겨울은 가고 아이들은 자라고 또 봄이 또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