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호사
눈이 온다. 아래로, 옆으로, 또 밑에서 솟구치며 오르기도 한다. 13층 창문으로 보니 함박눈송이들이 현란하게 은빛 세계에서 유영하고 있다.
올 들어 제대로 오기로는 첫눈이다. 어쩌면 마지막 눈이 될 수도 있겠다. 절기로는 입춘이 넘어서 오는 눈이다 보니.
인디언의 달력에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로 표현된다.
그동안 우리의 겨울도 그랬다. 동치미에 살얼음이 끼는 달, 처마 밑에 고드름이 열리는 달, 발 시리고 손 시린 달, 썰매 타기 좋은 달, 문풍지가 우는 달이었다. 농부들은 맘껏 쉬며 체력을 비축하는 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겨울을 보내야 새로 시작하는 봄을 맞을 준비가 될 것이니.
봄 같은 겨울을 지내며 불편했다. 뭔가 비정상적인 평안을 맞보는 것처럼. 다음에 어떤 또 다른 비정상적 자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요 며칠 제대로 춥고 눈도 와줘서 고맙다. 큰 씻김굿이라도 치르고 난 듯 기껍고 홀가분하다.
나뿐 아니라 다들 눈이 없어 편하기는 해도 찜찜한 겨울을 지내다가 진짜배기 겨울을 처음 맛본 듯 즐거워한다.
밤에는 오래도록 창밖의 설경을 바라봤다. 자려고 불을 끈 실내보다 오히려 설광으로 앞의 숲이 더 밝다. 은은하게 감도는 유백, 아니 청백색으로 빛나는 숲이 눈부셨다.
인디언들도 이런 겨울 자연의 정취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시간"을 맞았을 것이다.
불편해도 좋은 것이 있다. 눈이 쌓이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다소 덥고 겨울은 겨울답게 춥고... 그동안 이 땅의 선조들이 적응하며 살아왔듯이 그만한 범주 안에서 자연스럽게 리듬에 따라 계절을 준비하고 맞으며 사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생각해본다.
더 이상 편리하지 않아도 좋고 더 이상 잘 먹고 잘 입고 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내가 더 머물러야 하고 내 다음 세대가 앞으로 대를 이어 살아야 할 이 땅, 자연에 감사하며 좀 더 겸손한 태도로 공생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든 게 제자리에서 때를 알아 오고 갔으면 싶은데 희망을 가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있다.
어쨌건 올 겨울 눈이 왔고 지금은 눈이 주는 포근한 정취에 후붓하니 젖는 호사를 누린다.
베란다에서 홀로 꽃대를 올리고 향을 뿜는 난 화분을 안으로 들였더니 설경에 난향이 격이 맞아 잘 어울린다.
겨울의 끝에 맞는 뜻밖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