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이팝꽃

by 시우

공손한 손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추운 날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잡아내 시로 승화시킨 시인의 매서운 눈매에 힘입은 시 지만, 밥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숙연하게까지 만드는 그 시각.

왠지 저 밥을 대하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오전 일을 마친 노동자 또는 직장인 그것도 한 집안의 가장들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마 저 순간을 포착해내는 저 시인 역시 저렇게 귀한 밥을 버는 사람일 것이다.

공손하고 귀하게 밥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 남에게 함부로 하지도 않고 자신도 허투루 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나이 들며 어느 때부터인지 밥벌이의 신산함과 고달픔이 측은함과 안쓰러움을 넘어 숭고하게 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밥을 벌었을 가장인 지금 우리 세대, 그리고 그 윗 세대 그리고 그 그 윗대....... 거슬러서 원시 부족 시대에까지 세상의 맞바람을 몸으로 막아서며 밥벌이를 했을 가장과 그 食口들.


제아무리 교만하고 잘난 사람이라도 어려서 엄마 손에서 먹던 밥의 향수를 벗어날 수는 없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영화 "라따뚜이"의 한 장면.

독설가로 유명한 음식 평론가를 감동시킨 것은 철갑상어나 푸아그라 같이 값 비싼 식재료로 현란하게 만든 음식이 아니었다. 그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추억의 음식 '라따뚜이'였다. 혀 끝의 미각을 뛰어넘어 가슴으로 먹는 음식.

'라따뚜이'는 프로방스 지방의 토속음식으로 농부들이 즐기던 '야채스튜'라고 하니까 우리식으로 한다면 뭐 밥에 '따순 밥'에 '시래깃국'이나 '된장찌개'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한데도 영화의 그런 설정에 공감했던 것은 내 안에 자리한 비슷한 정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적 위치나 문화가 달라도 기본적인 인간 정서는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모든 곳에서 열심히 밥벌이를 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저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아무리 자본이 제일인 사회라고 해도 이 눈물겨운 '밥벌이'를 가지고 장난치거나 우롱하는 일이 제발 없어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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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밥보다는 직장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 따듯한 밥의 기억을 지니게 해 준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런 따듯한 밥의 힘을 저 깊이 뱃속에 지닌 사람과 아닌 사람은 삶을 살아내는 기초체력이나 내공이 다를 것만 같다. 알량한 세상의 지식 나부랭이를 넣어주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이 귀한 기억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 흡족하게 해 줬던가? 나이 들어서야 보이는 모든 것마다 난 자신이 없다.


이 오월, 길가에는 이팝나무가 고봉 쌀밥과 닮았다는 흰꽃을 이고 하얗게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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