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달새
초등학교 한 이삼 학년 때나 되었을까, 어느 봄날 낚시하러 가셨던 할아버지가 작은 새 한 마리를 자전거에 싣고 오셨다.
할아버지는 퇴직하신 후 집안 텃밭을 가꾸거나 주로 바둑, 낚시로 소일하셨다. 금구나 구이, 때로는 친구나 친척이 있는 타관에 가서 며칠씩 지내며 낚시를 하기도 하셨다. 늘 자전거로 다니셨는데 오실 때 싣고 온 낚시 바구니에는 모자, 짜가사리, 메기 같은 물고기가 들어있었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금구 저수지로 낚시를 가셨다.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데 옆의 풀숲에서 소리가 나서 가보니 새가 절름거리며 날아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셨다. 그대로 두면 죽을 거 같아 낚시도 일찍 접고 새를 자전거에 싣고 오신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이 새는 “어린 종달새”라고 했다. 참새 비슷하지만 몸은 좀 더 갸름했는데 오래 먹지 못해서 털도 헤성했고 뼈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게다가 가느다란 다리는 상처를 입어 흰 속살과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데다 피가 맺혀 있었다.
작은 상자에 넣어주고 물과 좁쌀을 주었지만 먹지 않았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한쪽 다리를 쭉 뻗친 채 쓰러져 있다시피 했다. 할아버지는 “상처가 나아야 제대로 앉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흥부가 제비 다리 치료하듯, 소독약을 바르고 할아버지는 부목을 대어 깨끗한 천으로 묶어주셨다. 좁쌀을 안 먹으니 새가 좋아한다는 메조를 구해서 주는 등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동생과 나는 그 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종달새도 우리의 정성을 알았던지 물과 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녀석을 “종다리”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뒤란의 대나무로 살을 깎고 나무판을 다듬어서 종다리의 집을 만드셨다. 직사각형 판을 위아래로 대고 그 사이에 세로로 잘 깎은 대나무 살을 촘촘히 세워서 새장을 만들어 주셨다. 안에는 모이통이랑 물통, 횃대도 달아 주었다.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정성스러운 새장이었다. 새장 위쪽으로는 작은 문도 있었다.
우리 종달이는 얼마 후 횃대에도 앉을 수 있었고 종달새다운 모습을 점점 갖춰가기 시작했다. 종달이 집은 앞 마루 낮은 선반 위에 놓았고 우리 가족은 수시로 들여다보며 돌봤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우리는 종달이가 파리를 그 어떤 먹이보다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리를 잡는 게 우리 자매의 지상 목표가 되었다.
여름 방학 내내 매일매일 집파리, 옆집 파리, 동네 파리를 죄다 잡아서 통에 모았다.
통에 파리가 까맣게 쌓이면 맘이 든든했다. 새장의 위문을 열면 벌써 알고 우리를 향해 입을 좍 벌렸다. 두어 마리씩 파리를 주면 납족납족 받아서 먹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아 가슴이 저릴 지경이었다. 동생과 나는 온 동네 외양간과 돼지막까지 죄다 덭으고 다녔다. 그 귀찮던 파리가 눈에 띄면 어찌나 고맙고도 반갑던지.
그러다 장마철이 되니 파리 잡기가 힘들었다. 비가 오니 옆집 원정을 갈 수도 없었다. 이미 우리 종달이는 살이 통통하니 오르고 털의 빛깔도 선명하니 자라 있었다. 그만큼 식사량도 늘어났다. 종달이를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고 그리운 파리들이었다.
번데기를 잘라 주면 마지못해 먹기는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고 조는 파리만큼 잘 먹지 않았다. 우린 애가 탔다.
그 지루한 장마도 끝나고 다시 파리 고단백식을 배불리 먹은 우리 종달이는 이제 부쩍 자랐다. 예쁜 소리로 뭐라 지저귀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를 보면 이내 자리를 고쳐 앉으며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아 신통했다. 새장 위 뚜껑을 살짝 열면 벌써 먹이를 주는 것으로 알고는 입부터 벌리며 반가워 소리를 내는 게 그리도 흐뭇했다.
어느새 여름 방학은 끝났고 우리 종달이는 씩씩하고 기운찬 새가 되었다. 점점이 밤색으로 때깔 좋은 깃털도 얼마나 보기 좋은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앞집의 커다란 감나무 잎은 햇살을 받아 초록으로 반짝이는 한가한 여름 오후였다.
살살 종다리랑 놀다 보니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예쁘게 돋은 뒷발톱이랑 통통한 몸이 처음 올 때와 비교해 얼마나 자랐는지 살짝 만져보고 싶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종달이를 새장에서 꺼냈다. 여리고 따듯하고 조그만 몸이었다. 두 손으로 모아 쥐고 자세히 살펴보며 놀다가 다시 새장으로 넣으려고 한 손을 움직인 순간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손을 밀치고는 푸드득 날아갔다. 앞집 감나무 가지로 날아가 한동안 앉아 있더니 포르르 창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선 버럭 겁이 났다. 전에 한번 만져보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놨던 터였다. 나보다 더 종달이를 애지중지하는 동생에게 그리고 어른들께도 면목이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 식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를 버리고 달아나버린 녀석이 너무 섭섭했고 가슴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맥이 풀렸다. 이게 현실이 아니기를, 잠시의 꿈이기를 바랐다.
우리 종달이가 잠시 날개 운동을 하고 곧 마루의 새장으로 돌아와 우리를 찾을 것만 같았다. 파리통도 파리채도 아직 그대로 있는데.
망연자실해서 하늘만 바라다보고 있는데 집안 식구들이 돌아왔다. 심상치 않은 내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묻는데 난 그만 말보다 먼저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참을 꺼이꺼이 서럽게 울었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할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어차피 종다리는 너른 하늘과 풀밭이 집이니 그렇지 않아도 놓아주려고 하던 참이라고. 아마 마음속으로 우리를 참 고맙게 생각할 거라고. 그 말에 동생과 나는 다시 울음이 터졌다.
빈 새장 안에는 종달이의 솜털 몇 개와 먹다 남은 조와 물통이 그대로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새장 뚜껑을 열어두고 며칠을 기다렸지만 어른들 말씀대로 제 고향으로 갔는지 아무 기척이 없었다.
한동안 혹시나 싶어서 동생과 나는 앞집 감나무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때가 많았다. 아침마다 우짖는 새 중에 우리 종달이의 소리가 들릴까 싶어 귀를 쫑긋했고 혹시라도 종달이가 인사를 하러 왔는데 우리가 못 알아보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했다.
난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멀리 날아가기 전 앞 집 감나무 가지에 앉아있던 그 짧은 순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아마도 종달이는 내게 작별 인사를 했을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잊지 않겠다고. 그 짧았던 순간이 내겐 멈춰진 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 후, 낙심해하는 나와 동생을 위해 엄마는 십자매를 구해서 그 새장에 넣어주셨지만 더 이상 정이 가지 않았다. 우리가 보살펴서 서로가 길들고 마주 보던 그 새가 아니었기 때문에 애틋함이 없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새를 기르는 일은 없었다. 그 십자매에 대한 기억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종다리를 기르며 즐겁고 애타고 슬펐던 기억은 지금도 시간을 넘어선 세계인 듯 생생하다.
나중에 만난 어린 왕자의 이야기에서 난 부분 부분 우리 종달이가 생각났다.
대학 때 기차 통학할 때 보던 그 푸른 보리밭, 혹시 멀리서라도 치솟는 종달새가 보이면 반갑고도 가슴이 아릿했다.
"우리 종달이는 잘 지냈을까? 가끔은 우리 생각도 했을까?"
그리고 난 살아오며 그 이후로도 수많은 나의 종달이를 만났다.
내 삶의 일정 기간을 함께 하며 거쳐 간 많은 동식물, 이웃 그리고 내 아이들. 그 많은 종달이들이 있어서 이만큼의 나로 자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만난 것은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뻔한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의 힘은 그 어떤 수로도 막을 수 없었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라. 어차피 종다리는 너른 하늘과 풀밭이 집이니 그렇지 않아도 놓아주려고 하던 참이다. 지금은 서운하겠지만 다 잘 된 일이다.”
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그때마다 난 기억해내며 위안을 삼았다.
다만 내 품을 떠나 우선 깃든 곳이 우리 종달이처럼, 앞집의 푸르고 실한 감나무 가지이기를, 거기서 힘을 비축해서 더 너른 창공으로 활짝 날개를 펴고 비상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크고 작은 만남과 기쁨 그리고 이별을 겪으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이 몸을 떠나 훌쩍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때가 올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내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