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나무
*사이프러스, 아몬드 나무
고호의 그림에서 접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남프랑스 아를이 아닌 사이프러스에 가서야 내 눈길을 끌었다.
삼각형으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자라는 나무를 통해 영령을 받아 시신이 부활한다고 믿어 로마에서는 주로 묘지 주위에 많이 심었던 나무. 지중해 근처의 나라에서 흔히 눈에 뜨이는 사이프러스는 주로 십자가나 관을 만들 때 사용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서도 "슬픈 사이프러스 관"이 언급되는 걸로 봐서 일반적인 용도가 그랬나 보다. 크레타섬이나 페니키아에서는 가옥, 선박에 사용했다고 한다.
40미터가 넘게 자란다는 이 나무는 사이프러스 어디를 가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파포스의 아프로디테 신전 앞에도 역시나 까마득한 높이의 청록빛 사이프러스가 서 있었다. 아무리 목을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 신전 구경을 마치고 서서히 걸어 나와 쉬는데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마치 매화처럼 때 이른 꽃이 만발한 나무가 서 있었다. "설마 매화?" 싶은 궁금증에 다가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흰 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 아래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서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고호가 어린 조카의 첫 생일 선물로 그려주기도 했던 이 아몬드 나무는 우리나라의 매화처럼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고 한다. 2월의 사이프러스에서는 가는 곳마다 흰꽃이 흐드러진 이 아몬드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오래전에 LA의 폴 게티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고호의 아몬드 나무 그림이 겉표지로 인쇄된 노트를 발견해 샀다. 이 노트는 푸른 하늘을 배경인 데다 마치 책같이 탄탄하게 제본되어 있다. 너무 예뻐서 가까이 두고 수시로 보며 몇 년째 아직 쓰지 않고 있다.
*자작나무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생각하면 난 늘 흰 자작나무 숲이 연상된다.
줄기가 희다는 산골 자작나무 숲, 흰 당나귀와 나타샤 그리고 백석, 응앙응앙 우는 당나귀의 울음이 간간이 들리는 눈이 푹푹 쌓이는 숲.
이 시의 그 어디에도 자작나무는 나오지 않지만 자작나무 숲 일 거라고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실은 흰 눈이 쌓이는 자작나무 숲은커녕 그 어디서도 자작나무 숲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자작나무라는 명패를 단 한 두 그루의 나무를 수목원이나 책에서 보았을 뿐.
몇 년 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개국을 러시아를 거쳐서 여행하면서 그동안 못 본 자작나무 숲을 모두 몰아서 실컷 보고 왔다. 여름이라서 눈 쌓인 숲은 아니었지만. 너무 빽빽해서 오솔길조차 나 있지 않은 숲은 세 나라 모두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거처럼 거목이 아니라 흔히 우리 산에서 보는 참나무 정도의 두께를 가진 나무들이 작은 잎을 무수히 거느리고 하늘 높이 쭉쭉 뻗어있었다. 그 후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자작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 맘 속의 자작나무 숲에는 여전히 흰 눈이 푹푹 나리고 가난한 시인과 그가 사랑하는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숲길을 가고 있다.
*올리브나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이란 영화를 아주 오래전에 봤다. 1987년 제작되었고 1996년 국내 개봉 영화니까 본 지가 20년은 더 되었나 보다. 이름도 생경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 감독의 영화다. 로카르노 국제 영화 수상작이라고 소개되었던 영화인데 내용이 단순해도 너무 단순한 영화다.
방과 후 실수로 친구 네마제데의 공책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된 아마드. 친구가 다른 공책에 숙제를 해 가면 선생님께 또 혼날까 봐, 그리고 선생님의 엄포대로 퇴학을 당할까 봐 걱정된다. 어른들은 아이의 걱정 어린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결국 아마드는 공책을 되돌려주려고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는 친구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결국 친구는 못 만나고 풀이 죽어 돌아오고.......
이 영화에 드러나는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이란의 마을 풍경, 해맑은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들 그때 눈에 띄었던 올리브 나무들. (정말 그게 올리브 나무였을까 싶기도 하다. 기억이란 때로는 왜곡되기도 해서. 하지만 설령 다른 나무더라도 내게는 무조건 올리브나무로 남을 거다)
하도 오래된 영화인지라 흑백이었는지 칼라였는지도 헷갈린다. 때가 때이니만큼 칼라 영화였겠지만 어슴프레 저물어가는 오래된 마을과 늙은 노인들, 흐릿한 풍경들로 인해 내 기억에는 마치 흑백 영화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어쩜 처음 봐서 인상 깊었던 올리브 나무도 애틋하고 희뿌연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 후 이란 감독 마지드 마지디의 "천국의 아이들"도 같은 감성의 영화였다. 아름답고 조금은 슬프고 그리고 정겨워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어 그냥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영화. 마치 이란판 어린 왕자를 읽은 느낌이었다.
그 후에 본 이란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까지 이어지며 올리브나무는 내게 조금은 특별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서 본 올리브 나무는 내 기억 속의 인상과는 좀 달랐다. 지중해 주위의 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올리브 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도 나무 밑동이 내 상상과는 다르게 별로 굵지 않았다. 대다수의 과실수가 그렇듯이 대단히 울창한 그늘을 드리우지도 않았다. 척박한 곳 건조한 곳에 줄지어 선 이 나무는 내가 보아온 사과나무나 배, 복숭아 과수원과는 달리 나무는 옹이가 진듯 비틀리고 좀 시원찮아 보였다. 즙이 많고 과육이 풍성하고 향기가 도드라지는 우리네 과실나무와는 전혀 달랐다.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선 곳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목이 마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림으로 찾아본 올리브나무 과수원은 내가 본 것과는 사뭇 다른 곳도 많았다. 난 코리끼의 꼬리쯤을 보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생각에는 올리브를 과일이라 부르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그곳 토양이나 사람들의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듯이 생활과 밀접한 과일도 다르겠지만. 하기사 따지고 보면 열매 크기가 비슷한 우리 대추나무도 그 비슷하지 싶기는 하다.
*때죽나무
언젠가 오월 산에 오르다가 물가에 앉았다. 이때 어디선가 향기가 은은히 퍼지고 있었는데 흐르는 맑은 물 위로 흰 꽃이 하늘을 바라보고 줄지어 누워 있었다. 마치 하얀 꽃등을 부러 물 위에 띄워둔 것 같았다. 수십 개의 하얀 꽃등이라니!
눈을 들어 보니 위쪽의 나무 가지에 그 꽃이 오종종 수없이 피어 있는데 긴 꽃자루가 있어 종처럼 가지에 매달린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 꽃은 지나면서 보면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꽃이 떨어져 물 위에 떠 있거나 아니면 나무 아래 누워서 위를 바라보면 청초한 흰 꽃과 노란 꽃술의 해맑은 자태가 그제야 드러난다. 이름도 모르는 그 꽃에 취해 있다가 봄산을 내려왔다.
나중에 알아보니 때죽나무였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로 겸손하게 피어있대서 겸손이라는 꽃말도 얻은 모양이다. 나중에 정원수를 심는다면 감나무 옆에 이 때죽나무를 꼭 심어야지 마음먹기도 했다.
올해는 계곡이 있는 산에 올라 흐르는 물에 동동 떠있는 이 때죽나무 꽃 감상도 못하고 말았다. 좀 아쉬웠는데 산책을 다니다 보니 우리 아파트 화단 한편에 이 나무가 한 그루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리수거하러 가면서도 일부러 그곳으로 지나다니며 한 동안 즐겼다. 오월이면 장미와 더불어 가장 보고 싶은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