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산

나의 큰 바위 얼굴

by 시우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매일매일 새롭게 풍성해지는 앞 숲을 보는 것은 내 생활의 잔잔한 기쁨이다. 벌써 십수 년째 봐와도 질리지 않는다. 비가 올 때는 비가 와서 눈이 올 때는 눈이 와서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이 불어서 좋다.

주차장도 비좁고 오래되어 수리할 곳도 수시로 생기는 데다 층간 소음도 적지 않은 이 낡은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맨 처음 이 아파트에 꽂혀 덜컥 계약을 한 이유도 오로지 하나, 앞의 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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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처럼 겨울철에 부엉이 울음소리가 뒷산 대밭 너머로 들리기를 바라는 것은 꿈같은 일이지만 그래도 이 숲은 산비둘기가 심심찮게 울어주고 딱따구리, 소쩍새, 뻐꾸기 소리가 간간이 들리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마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매년 새로운 봄을 이 비슷한 풍경을 마주하며 지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전에 어느 작가가 외국을 많이 둘러봤지만 한국 산하와 그 포근한 능선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 글을 보고 "쳇!" 했었는데 나이 들며 그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조금은 가슴으로 와 닿는다.


전에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이들의 전통가옥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다. 노스페이스 즉,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한 샬레였다. 어디를 찍어도 바로 엽서나 화보 같은 이 아름다운 곳에서 며칠을 지내던 때다. 어느 날 한밤중에 창밖을 올려보다가 창으로 검게 그리고 거대하게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노스페이스의 모습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일순간이지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낮에 보던 모습과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동네 앞산이 아니라 그곳은 알프스였던 것이다. 이는 경배나 경외의 대상이지 우리 동네 산처럼 우리들에게 허리를 송두리째 내어주고 온갖 나무와 풀과 야생 동물의 보금자리를 품어주고 무덤 자리까지 허락하는 그런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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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앞 산의 숲은 찬란한 빛깔의 향연이다. 꽃보다 고운 신록이 점점 짙푸르러 가고 우듬지가 쑥쑥 자라 오르는 데다 올겨울 매서운 추위에 잎이 누렇게 죽어가던 대나무도 올봄 들어 죽순을 밀어 올려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커다란 포플러 나무 사이에 둥지를 튼 까치네 가족도 부지런히 드나든다. 오동나무의 연보랏빛, 아카시아나 이팝나무의 크림빛이 연두나 초록과 어울려 눈부시다. 연두에서 초록까지의 빛깔이 얼마나 다양한지 헤아릴 수 없는 색의 향연이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저 아래로부터 몽글몽글해진다.

이 또한 시간의 여유가 주는 감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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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늘 만만하고 친숙한 이 앞산도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한 매년 계절의 변화를 나와 함께 겪을 것이다. 항상 같은듯하면서도 늘 새로운.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시방 세상은 눈부심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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