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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19. 2021

쑥버무리

쑥버무리는 봄에만 먹을 수 있는 계절 음식이다. 비슷한 것으로 쑥개떡이 있지만 쑥개떡은 삶은 쑥을 냉동실에 저장해놨다가 사시사철 해 먹을 수 있으니 이젠 진정한 의미의 봄 음식은 아니다. 쑥을 캐서 씻고 쌀가루에 버무려 찌는 간단한 음식. 김 오른 솥에다 베보자기를 깔고 살살 버무린 어린 쑥과 쌀가루를 안쳐서 찜 솥에 푹 쪄내면 말 그대로 '쑥버무리'가 완성된다. 지금에야 간단히 하기로 맘먹으면 시장에서 쑥도 팔고 쌀가루도 파니 잠깐만 짬을 내면 해 먹을 수 있겠지만 예전의 음식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맛있었다.


떡을 해 먹으려면 미리 전날 멥쌀을 씻어 불리고 새벽에 건져놨다가 절구에 찧었다. 체로 가루를 내리고 다시 빻는 과정을 거쳤지만 얼마 후에는 집에서 절구질을 하는 것은 건너뛰고 새로 들어선 동네 방앗간을 이용했다. 물기 빠진 쌀을 소쿠리나 함지박에 담아 상보로 덮어서 방앗간까지 다녀오는 것은 주로 우리 아이들 몫이었다. 그 사이 어른들은 쑥을 씻어 건져둔다. 마침맞게 빻아온 쌀가루로 젖은 쑥을 버무리는 사이 시루 번을 붙인 큰 솥에서는 물이 설설 끓어오른다. 시루 밑을 깔고 잘 섞은 쌀가루를 안쳐 김새지 않게 시루에 푹 찌면 하얀 김이 솔솔 나면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긴 나무젓가락으로 찔러봐서 묻어나지 않으면 다 쪄진 것이다. 긴긴 기다림 끝에 그 향긋한 떡을 한쪽 받아 들었을 때의 흐뭇함이라니.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지금 아이들도 떡 찌는 냄새를 고소하다고 생각할까? 솥에서 밥물이 잦아들고 뜸이 드는 밥 짓는 냄새를 달콤하고 행복한 냄새로 생각할까? 아니 그런 냄새가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해저물녘 동네 고샅에서 동무들과 놀다 보면 어느 집 아궁이에서 잔솔가지를 태우는지 잔잔한 연기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 집 저 집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제 집에 가야겠구나 생각했던 그때의 그 아릿한 정경. 지금도 객지에서 농촌의 낯선 동네를 지나다가도 어디선가 그 비슷한 냄새나 풍경을 만나면 발걸음이 멈춰진다. 그리고 이제는 하던 것 죄다 놓고 그만 엄마가 기다리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애잔한 심정이 드는 그런 마음을 내 아이들이 이해나 할까?       


어른들 곁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긴긴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러난, 그 시간의 맛과 향기를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내게 쑥버무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 전 같으면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가 해주셔서 봄이 오면 당연한 걸로 알고 먹곤 했는데 이제는 두 분 다 쑥을 캐러 다니거나 떡을 하기에는 연로하시다. 이젠 내가 해 드려야 할 차례인데. 그분들에게야 말로 더 진한 향수가 밴 음식일 것인데... 그저 죄송할 뿐이다. 난 쑥개떡을 사서 나누는 것으로 손쉽게 계절을 차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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